지난해 문을 연 온라인 식품 쇼핑몰 ‘마켓컬리’가 미식가들과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화제다. 상품 구성을 보면 미식가들이 환호하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긴 줄을 서도 금세 품절돼 맛보기 힘든 서울 이태원의 천연 효모종 빵집 ‘오월의 종’과 광진구 자양동의 정통 프랑스 베이커리 ‘라몽떼’의 빵, 마장동의 자부심으로 통하는 ‘본앤브레드’ 숙성 한우, 지리산 자락에서 기른 국내 유일의 버크셔(흑돼지) 스테이크 등은 최고급 백화점 식품매장에서도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7시(서울·경기 지역) 전에 문앞에 상품을 두고 가니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기분마저 든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사치스런 미식가들을 위한 쇼핑몰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식도락’은 마켓컬리를 설명하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지난주 서울 잠원동 마켓컬리 사무실에서 만난 김슬아 대표는 우리나라 유기농·친환경 식품의 유통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사업을 시작한지 1년밖에 안 된 스타트업치고는 원대한 포부다.
김 대표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몇몇 글로벌 컨설팅회사와 투자회사에서 일하다 2014년 귀국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미식의 천국이잖아요. 먹으러 엄청나게 다녔어요. 컨설팅과 투자업무도 유통 분야에서 해왔구요. 한국에 와서 보니까 좋은 식품을 사는 게 너무 비싸고 불편한 거에요. 구조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분석을 해보니 신선식품 유통구조가 기형적이에요. 생산자들은 돈을 못 버는데, 소비자들은 굉장히 비싸게 사먹어요. 유통업체들이 대부분의 이익을 취하는 거죠. 친환경·유기농 농산물이 더 심해요. 유통구조를 바꿔서 농부는 더 벌고, 소비자는 더 싸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친환경·유기농 매장은 대부분 임대 매장이다. 유통업체들은 판매수수료만 챙긴다.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도 않는다. 날씨 등에 따라 공급이 들쭉날쭉하기 십상인 친환경·유기농 농산물의 재고 부담을 생산자가 고스란히 진다. 위험요인이 큰 만큼 생산자는 판매가격을 높게 책정한다. 가격이 비싸니 수요는 늘지 않는다. 악순환이다.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돌리기 위해 마켓컬리는 모든 상품을 생산자와 직거래하고, 100% 직매입한다. 생산자한테 선주문을 통해 생산량을 미리 확정해준다. 재고 부담은 전적으로 마켓컬리의 몫이다. “모든 위험은 우리가 떠안을테니 생산자는 생산에만 집중하시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가격을 낮추고, 소비자들이 일반 농산물보다 약간만 더 지불해도 친환경·유기농 농산물을 먹을 수 있게 하자는 거에요. 박리다매로 수요를 키워야 친환경·유기농 농업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재고 부담을 떠안은 만큼 잘 팔아야 한다. 백화점보다 더 세련된 포장 디자인을 입힌다. 잠원동 사무실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푸드스타일리스트와 사진가가 천원짜리 고추, 쑥갓, 오이까지 먹음직스럽게 사진을 찍는다. 더 중요한 것은 소비 예측과 재고관리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수요예측과 재고관리가 핵심 역량이에요. 우리의 정체성은 절반이 유통, 나머지 절반은 정보기술(IT)이라고 봅니다.”
갓 문을 연 회사가 직매입을 하겠다며 찾아왔을 때 대부분의 농가들은 반신반의했다. 바이어들은 수시로 농장을 방문해 함께 사과도 따고, 청소도 해주고, 농가 아이들 학교 영어숙제도 도와주며 신뢰를 얻었다. 결정적으로 생산자들의 마음을 산 것은 그들에 대한 브랜드 마케팅이었다. 마켓컬리는 대부분의 상품이 누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법으로 농사를 지은 것인지 시시콜콜 설명한다. “유기농·친환경 농사로 이름난 농가들은 자기만의 철학이 확고하고 자부심이 높아요. 저희만큼 그분들의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업체가 없어요.” 생산자에 대한 존중은 여러 백화점들의 입점 제안을 줄기차게 거절해온 빵집 오월의 종이나 라몽떼 등을 입점시킨 비결이기도 하다.
다수의 생산자와 거래하며 경쟁을 시키는 대부분의 유통업체들과 달리 마켓컬리는 한 상품에 대해 한 명의 생산자만 둔다. 개별 생산자 입장에서는 대형마트나 마켓컬리나 공급하는 물량이 비슷해지는 것이다. 마켓컬리가 규모의 경제를 통한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비결이다. “다른 유통업체 바이어들은 새로운 상품, 새로운 생산자를 찾아내는 게 일이에요. 우리 바이어들은 기존 생산자들을 만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씁니다.”
우유는 마켓컬리가 판매할 상품을 고르는 방법을 잘 보여주는 예다. 1년 전 사이트를 오픈할 때부터 우유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어떤 우유를 팔 것인지 자체 기준을 마련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시사철 풀을 뜯어먹는 소에서 나오는 우유를 팔겠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런 조건을 갖춘 우유는 없었다. 일부 유기농 목장도 여름에는 풀을 먹이지만 풀이 없는 겨울에는 수입 건초를 먹인다.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겨울에도 따뜻한 제주도에서 국내 최대 규모 초지를 보유한 목장을 찾았다. 우유값 폭락으로 몇 년 전 폐업한 목장주를 간신히 설득해 다시 소를 키우기로 했고, 곧 이 목장의 우유를 판매할 계획이다.
이런 식으로 상품을 고르기 때문에 마켓컬리는 한 카테고리당 3종류 이상의 상품을 팔지 않는다. “백화점에 가보면 올리브유를 수십종씩 진열해놓잖아요. 그러면 소비자들은 어쩌라는 거죠? 유통업체라면 자기들이 진짜 좋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팔아야죠. 유통 마진이 중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가여서는 안 되죠. 고객에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마진을 받아야 합니다.”
지난해 5월 문을 열 당시 70개 상품으로 월 1억원 매출을 올린 마켓컬리는 1년 만에 상품수 1300개, 월 매출 20억원을 돌파했다. 올해 안에 월 매출 100억원 달성이 목표다. “수요예측과 재고관리를 계속해서 잘 해내면 우리가 이 시장에서 승자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보다 규모가 10배 정도 커지면 식품 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겁니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470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