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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평화 : 다름을 인정한 하나, 하나임을 자각한 다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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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평화 : 다름을 인정한 하나, 하나임을 자각한 다름

독립출판 무간 2016. 9. 4. 20:17

그렇다면, 모든 존재는 서로 같은 것일까, 서로 다른 것일까? 존재는 총체적 하나일까, 아니면 낱낱이 독립된 개별적 존재일까? 불교에서는 이 질문에 대해 불일불이라고 대답한다.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당연히 혼란스러워한다. 같으면 같고 다르면 다른 것이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그러나, 바로 이 속에 평화의 원리, 공존의 원리, 화합의 원리가 들어 있다.

 

콩을 콩끼리 비교하면, 서로 다 다르다. 그러나, 콩과 팥을 놓고 비교하면 서로 다른 콩이라도 모두 같은 콩이 된다. 콩과 팥을 채소와 비교하면 콩과 팥은 같은 곡식이 된다. 콩, 팥, 채소를 옷과 비고하면 콩, 팥, 채소는 같은 음식류가 된다. 상황에 따라서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존재 자체는 같다고 할 수도 없고, 다르다고 할 수도 없다. 즉,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불일불이).

 

나와 너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나와 네가 다르다고 할 때, 다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도 있다. 나와 네가 같다고 할 때도 같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도 있다. 그러므로, 기준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눈의 모양을 비교할 때는 네 눈과 내 눈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눈의 개수를 비교할 때는 너도 두 개고 나도 두 개로 서로 같다. 따라서, 어떤 조건에 놓이느냐,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같다고도 할 수 있고, 다르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서로 다름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때의 다름은 '너와 나는 무관한 존재이다'라는 뜻이 아니다. '너와 나는 무관하다. 너와 나는 상관없는 개별적 존재이다'라고 할 때의 다름은 갈등과 분쟁을 낳는 다름이지만, 나와 다른 생각, 다른 경험, 다른 조건의 삶을 살고 있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다름은 화해와 공존을 낳는 다름이다. 사물과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불화나 갈등의 문제는 바로 이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 생긴 것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길이고, 나 자신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사물과 세계를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길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 나는 이것을 좋아하지만 너는 그것을 좋아하는구나. 좋아하는 것이 서로 다른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어떤 불화나 갈등도 생기지 않는다. 다른 것을 다르다고 인정하지 않을 때 갈등이 생긴다. 현실에서는 분명 서로가 다른데, 머릿 속의 관념에서는 서로 같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하나'의 문제도 잘 이해해야만 한다. '우리 모두가 연관된 하나이다'라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무조건 '하나'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한 바탕 위에 성립하는 생생적 '하나'를 뜻하는 것이다. 즉, 별개의 다름이 아니라, 연관되어 있는 '하나'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하나'라는 말을 편협하게 이해하여 '모든 것이 똑같은 한 덩어리'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반드시 싸우게 되어 있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도 나를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했다. 그러니, 우리는 생각도 같아야 하고, 식습관도 같아야 한다. 부부는 일심동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상대방에게서 나와 다른 점이 발견되는 순간 그것을 참기가 아주 어려워진다.

 

'나는 아침에 밥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너는 빵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일요일에는 쉬는 것이 좋은데, 너는 놀러가는 것을 좋아한다. 나와 너는 서로 너무 다르다.' 이렇게 자신과 다른 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관계의 벽이 생긴다. 그러면, '성격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다. 도무지 같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우리는 헤어질 수밖에 없다'라는 결론밖에 나올 것이 없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면 언어나 폭력으로 서로 싸우면서 서로를 해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때려봐야 자기 마누라고, 긇어봐야 자기 남편이다. 또 부숴봐야 자기 살림이다.

 

이런 일들은 '하나'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하나라는 것은 독립된 존재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다. 하나라고 해서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에서 비롯된 오류이다. 사람들은 이 명백한 오류를 생활 속에서, 삶 속에서 무수히 되풀이한다. 그래서 개인 단위에서, 사회 단위에서, 역사 단위에서, 세계 단위에서 끊임없는 갈등을 만들어 낸다.

 

한 개의 손으로 연결되어 있는 다섯 개의 손가락은 모두 다 제각각으로 생겼고, 각각의 역할도 조금씩 다르다.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손과 발도 마찬가지다. 각각 서로 다르지만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라고는 하지만 단일의 하나가 아니라, 하나로 연관되어 있는 하나이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다름을 인정한 하나, 하나임을 자각한 다름 즉 불일불이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몸으로 실천해 나갈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되는 삶을 살 수 있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면서 서로가 하나임을 자각할 때 가장 위대한 평화, 가장 아름다운 평화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불교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평화다.

 

법륜 지음, <마음의 평화, 자비의 사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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