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새로운 향과 맛을 만들어내는 3가지 방법과 원리 본문
혀로 느끼는 맛은 단맛, 신맛, 짠맛, 감칠맛, 쓴맛 이렇게 다섯 가지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재료별로 각각의 독특한 맛 성분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과에는 사과 맛 성분, 딸기에는 딸기 맛 성분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과 맛 성분이나 딸기 맛 성분이란 건 없다. 오로지 그런 맛을 느끼게 하는 향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입 뒤로 코와 연결된 작은 통로를 통해 냄새물질이 휘발하여 느끼는 향이 수만 가지 맛의 실체이다. 그래서, 코에 염증이 발생하면 다양한 맛은 사라진다. 코를 막고 음식을 먹어도 맛은 희미해지고 불완전해진다. 작은 통로로 휘발되는 0.0001g(분자 개수로는 30경 개 정도)도 되지 않는 적은 양의 향이 수만 가지 다양한 맛을 창출하니 맛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맛의 90%는 향에 달려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1. 마이야르 반응 : 당류 + 아미노산
마이야르 반응에 의해 당과 아미노산과 만나면, 수백 가지 향기 물질이 만들어 지고, 노릇노릇하거나 황갈색을 띤 먹음직한 색이 나온다. 구운 빵, 비스킷, 구운 고기, 연유, 볶은 커피, 군고구마, 군밤, 호떡, 부침개, 튀김 등의 로스팅 향이 바로 이 마이야르 반응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 반응은 물이 끊는 온도인 100℃에서는 미약하고, 160℃ 이상에서 제대로 발생하기 시작하여, 190℃ 정도에서 가장 활발하고, 이 이상의 온도에서는 탄 냄새가 심해진다. 이 반응은 설탕, 흑설탕, 꿀, 메이플 시럽 등이 있으면 잘 일어나고, 물이 많으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생선을 구울 때, 물기를 제거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분이 많으면 물이 100℃에서 끓으면서 열을 빼앗기 때문에 반응이 약해진다. 수분이 증발한 이후에는 갈변 반응이 본격적으로 일어난다.
저온에서 장시간 처리한다고 고온에서 만들어 지는 향기 물질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전자레인지는 이런 물질을 만들지 못한다. 내부 온도가 먼저 올라가 스팀이 발생하여 표면 온도가 높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표면에 갈변과 향 생성 반응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고기나 생선이 구워지지 않고 삶아지는 셈이다. 또한 최근에 각광받는 수비드(sous vide) 요리가 물성은 완벽한데 향이 부족한 이유이다. 수비드 요리는 아무리 오래 조리해도 더 익지 않는다. 고기 전체가 완벽한 미디엄 레어로 되어 육즙이 하나도 증발되지 않고 타지 않은 스테이크가 된다. 하지만 수비드 방법으로는 갈변 반응으로 인한 특유의 맛과 향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수비드로 조리한 고기를 다시 팬에 살짝 굽거나 토치로 겉을 굽기도 한다.
2. 캐러멜 반응 : 당류(탄수화물)만 있을 때
캐러멜 반응은 아미노산 없이 당류만을 가열했을 때 일어난다. 이 반응을 통해 무취 무색한 당에서 놀라울 만큼 다양한 향과 색이 만들어 진다. 당을 가열하면 당과 단맛은 줄어들고, 색깔은 짙어지며 향이 강해진다. 반응이 지나치면 쓴맛도 강해진다. 캐러멜은 대개 설탕으로 만드는데, 설탕은 구성 성분인 포도당과 과당이 분해된 후 새로운 분자들로 재결합된다. 과당을 ‘환원당’이라고도 하는데, 분자 내에 알데하이드 구조가 있어 반응성이 크기 때문이다. 설탕은 1개의 과당과 1개의 포도당으로 되어 있어서 과당보다는 반응성이 떨어진다. 포도당, 설탕이 캐러멜화 되는 온도는 160℃로, 맥아당의 180℃보다는 낮지만, 과당의 110℃에 비해 훨씬 높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캐러멜 반응을 직접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설탕을 물과 섞은 다음 물이 증발하고 녹은 설탕이 갈색이 될 때까지 가열하는 것이다. 캐러멜 반응에 의해 생기는 향에는 여러 가지 미향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버터와 밀크 향, 과일 향, 꽃향기, 단내, 럼주 향, 구운 향 등이 대표적이다. 반응이 진행되면서 애초의 설탕이 더 많이 파괴됨에 따라 혼합물의 맛은 단맛이 줄고 신맛, 나아가 쓴맛과 거슬리는 태운 맛 등이 더 두드러지게 된다.
3. 지방이 분해되면서도 향이 만들어진다
지방 자체는 맛이 없고 느끼하지만, 가열하면 많은 향을 만들어 낸다. 모든 날고기는 약하고, 피와 같은 향을 가지고 있어서 특징적인 고기의 향은 조리에 의해서만 발현된다. 고기 향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고, 가장 많이 요구되는 향은 언제나 소고기 향이다. 따라서 소고기를 쓰지 않고도 소고기 향을 만드는 연구가 지금까지도 많이 수행되고 있는데, 우지에 시스테인 같은 아미노산 류 또는 단백질 가수 분해물 그리고 환원당을 사용한 소고기 향 제조법이 개발되기도 했다. 당과 시스테인 같은 아미노산에 소기름이 있으면 소고기 향, 돼지기름이 있으면 돼지고기 향, 닭기름이 있으면 닭고기 향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옛날에 돼지기름으로 볶았을 때는 맛이 있었는데, 지금은 왜 이래? 이건 짜장 맛이 아니야!”, “예전 부침개는 맛이 있었는데, 지금은 왜 맛이 없지?” 이런 투정 섞인 실망의 원인은 바로 기름에 있다. 소기름(우지), 돼지기름(돈지)에 튀기면 맛있던 튀김이 식물성 유지에 튀기면 맛이 없는 이유는 소고기 향과 돼지고기의 향을 있게 한 주인공인 지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떤 식재료든 포도당 같은 당과 시스테인(황 함유 아미노산)이 있는데 이것이 소기름을 만나 소고기 향, 돼지기름을 만나 돼지고기 향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여기에 식물성 기름을 쓰자 이 향이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채소튀김을 튀겨도 소기름에 튀기면 은근한 소고기 향이 생겨서 맛있었던 것인데, 건강 전도사들이 동물성 기름 나쁘다고 하여 모두들 식물성 기름으로 바꾸자, 이런 향이 생기지 않아 맛이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동물성 기름에 대한 오해가 속속히 밝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기름은 향을 유지하는 능력이 아주 크다. 향기 성분이 기름에 잘 녹기 때문이다. 또 가열 중에 발생한 향이 기름에 포집되어 풍부한 향을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삼겹살이나 마블링이 좋은 고기가 맛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가열로 제품 속에서도 만들어져 천천히 스며 나오는 풍부한 향은 겉에만 살짝 입힌 향에 비해 깊은 맛을 준다.
http://chefnews.kr/archives/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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