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석유가 밭을 차지하다! 본문
문명의 역사는 땅을 경작하면서 시작되었다. 보관과 유통이 가능한 곡물농사는 축적과 소유를 가능하게 했고, 탐욕을 기반으로 한 사유제를 탄생시켰다. 사유제는 석유에너지를 기반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극점에 올려놓았지만 이제 석유문명은 오일피크(Oil Peak ; 석유 생산 정점)를 거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그에 따라 자본주의도 그 앞날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자본주의는 먹는 물에서부터 모든 생명, 그리고 인간과 자연까지 상품화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 결과 인간은 식량뿐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농부들조차 씨앗과 비료를 돈으로 사서 농사를 짓게 된 지 오래다. 지구의 전 생명체가 산업화된 재배방식과 타성에 젖은 사육방식에 위협당하고 있는 이즈음, 자연의 질서에 최대한 순응하면서 의식주를 손수 해결하는 법을 모색해 보면 어떨까?
정겨운 봄햇살과 바람이 달리는 차창 안으로 들어온다. 바람에 일렁이는 것들이 은빛으로 빛난다. 그 옆으로 출렁이는 검은 빛. 밭을 보고 있는데 파도가 일렁이는 듯 착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아마도 밭에 깔린 비닐 때문이리라. 검은 비닐 가운데 투명 비닐로 되어 있는 것들이 빛에 반사되어 마치 검은 바다에 부서지는 은빛 파도처럼 보인다. 검은 바다. 비닐이 모든 밭을 도포해 버렸다. 땅이 어느새 검은 석유 바다가 되어버린 것이다.
"비닐 없이 어떻게 농사를 지어요?"
불과 3~4년 전만 해도 '농약 없이 어떻게 농사를 짓느냐'며 울상이던 사람들이 이제는 '비닐 없이 어떻게 농사를 짓느냐'고 묻는다. 친환경농사가 대세이므로 농약을 덜 쓰는 한이 있어도 비닐은 꼭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실 어떤 농사 관련 규정에도 '비닐을 사용할 수 없다'라는 말은 없다.
새로 얻은 밭을 정비하면서 지난 해에 농사를 짓던 할머니와 실랑이를 벌였다.
"난 300평을 해야 돼"
"비닐은 치지 말고 농사하셔야 해요"
"아니, 비닐 없이 어떻게 농사를 지어?"
"왜 못 해요? 비닐 덮지 말고, 100평만 하면 되는데"
"난 100평 못 해. 300평 해야지"
"300평이나 하려니 비닐 농사를 고집할 수밖에요. 100평 정도만 하시면 비닐을 치지 않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요"
할머님이 굳이 비닐을 치려고 한 것은 무리하게 300평의 땅을 농사지으려 했기 때문이다. 비닐을 깔지 않고 호미로만 땅을 매면 300평은 어림없다. 하지만 100평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계속 고집을 부리신다. 심지어 5평짜리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도 비닐을 깐다. 밭농사에는 으레 비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젊은 유기농업 농사꾼에게 물어도 비닐이 없으면 농사를 짓기가 어렵다고 대답한다.
"왜 비닐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농사에 비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잡초 제거' 때문이다. 풀을 베자니 시간과 노동이 문제고, 제초제를 뿌리자니 인간에게 해롭다. 풀을 손수 벨 수 있도록 규모를 적게 하자니 돈이 안 된다. 이래저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변현단 글 / 안경자 그림, 약이되는 잡초음식,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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