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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비닐이 무서운 이유...?

독립출판 무간 2016. 8. 20. 15:00

비닐을 깐다고 해서 당장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가뭄도 덜 타고, 풀도 덜 매고, 수확량도 많고, 노동력도 덜 들고, 비용도 훨씬 저렴하다. 비닐이야 나중에 걷어내면 된다. 그만큼 비닐은 매력적인 농사 자재이다. 문제는 비닐의 소재가 석유라는 데 있다. 석유로 만든 비닐은 세대에 걸쳐 문제를 일으킨다. 당장 눈앞의 '돈'과 '편리'를 생각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비닐은 썩어 없어지는 데만 500년이 걸린다. 태워서 없앨 때 유독가스가 나오고 완전히 연소되지 않은 재가 남는다. 그러므로 거시적인 안목으로 생명과 자연에 대해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깨달음이 현실의 이익보다 앞서야 한다는 뜻이다.

 

밭에도 비닐을 깔지만, 비닐하우스 안에도 깐다. 잡초가 나는 것을 우려하는 탓이다. 그 속에서 자란 식물을 상상해 보라. 제대로 숨을 쉬기는 커녕 꼼짝달싹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더구나 한여름에 검은 비닐을 덮어 쓰고 있다면... 몸 하나 움직이지 못하도록 빽빽하게 가둬 놓고 알만 낳게 하는 양계장의 닭과 다를 바 없다.

 

석유가 고갈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비닐사용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농사를 지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 지 우왕좌왕하게 된다. 석유원료가 투입되는 기계로 농사를 지었던 사람들도 농기구를 제 몸에 맞게 손질을 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실제 농사는 약간의 손도구를 이용하여 사람이 자연을 일궜던 일인데, 이런 농사짓는 방법을 모른 채 기계와 비닐에 의존해서 농사를 지었다면 두 가지 폐해를 가져올 것이다. 첫번째 폐해는 비싼 돈을 투자해 구입한 기계이지만 그 기계에 종속된 농사를 짓게 되는 것이고, 두 번째 폐해는 기계와 비닐을 앗아버리면 농사를 어떻게 지을지 몰라 당혹해 하는 '종속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몇 년 전에 정부가 지원했던 화학비료 보조금을 단절하자 '어떻게 농사를 짓나'하면서 농민들이 시위를 벌였던 적이 있다. 식물과 땅, 자연의 특성을 무시하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만들어내는 기업으로부터 머리와 기계를 빌어 농사를 짓고 돈을 버는 일은 농사가 그만큼 고되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공장에서 상품을 찍어내는 일과 동등하게 취급되는 탓도 있다.

 

농사는 인간의 땀으로 자연의 일부를 일구어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활동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이 주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자연이 흔하다 하여 천하게 여기지 말고, 소유하려 애쓰지도 말아야 한다. 자연의 사유화는 수직적인 사회구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수직적 사회구조는 자연에 의존하여 농사를 짓던 농부들의 생활문화를 앗아버렸다. 농부들의 문화가 석유문명의 대안임을 알지 못한 채. 이 같은 차원에서 볼 때 기원 전 4세기에 살았던 중국의 장자에 얽힌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공이 채소밭을 일구고 있는 한 노인을 보게 되었다. 노인은 밭의 물골을 파고 있었다. 그는 혼자서 이래쪽 우물로 내려가 항아리에 물을 담아 와서는 그것을 위쪽 물골에 쏟아 붓는 고된 작업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주공이 말했다. "뒤쪽이 무겁고 앞쪽은 가볍게 만들어진 나무 지렛대를 하나 만드세요. 그것을 물을 빨리 퍼올리게 되면 물은 그 다음부터 저절로 솟아오르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두레우물이라고 부르지요." 그러자 노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소인은 소인의 스승으로부터 어떤 일을 할 때 기계장치를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일을 기계처럼 하게 되기 쉽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의 일을 기계에 의존햇 해치우려는 사람은 기계와 같은 마음을 키우게 되고, 가슴에 기계와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단순성을 잃게 됩니다. 단순성을 잃게 되면 결국 자신의 기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것은 곧 진실한 느낌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며, 단순히 기에 대해 무지하다는 차원을 넘어 기를 활용하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변현단 글 / 안경자 그림, 약이 되는 잡초음식,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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