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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우리는 지구의 물을 빌려쓰고 있을 뿐이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12. 07:19

'지구의 날' 행사가 있던 2002년 4월, 나는 <알렉세이와 샘>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모토하시 세이이치와 대담하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나는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비가 오네...'하면서 '지구의 날'에 내리는 비를 달가워하지 않는 자신을 책망하며, 빗속을 뚫고 회담장인 요코하마 항구의 대형 선박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주변은 온통 바다고, 하늘에서는 세찬 빗줄기가 퍼붓고, 사방이 그야말로 물투성이었다. 그리고 그 날 모토하시와 이 대화도 거의 물에 관한 것이었다. 그 때 이후, 나에게 있어 물은 하나의 테마가 되었다.

 

영화의 무대가 된 곳은 벨라루시공화국의 부지시체 마을. 그 곳은 1986년 폭발 사고가 일어났던 체르노빌 원전에서 북동쪽으로 18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정부의 이주 권고로 600명의 주민 대부분이 마을을 떠났지만, 55명의 노인과 알렉세이라는 한 청년이 그 마을에 남아 살고 있었다. 사고로 인해 마을의 숲도 밭도 초원도 모두 방사능에 오염되어 버렸지만, 그 마을 중심에는 마치 기적처럼 방사능이 전혀 검출되지 않는 셈이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 56명의 사람들만이 마을에 남게 된 것일까? 그들은 이 마을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풍요로움 삶이 있다고 했다. 특히 '100년의 샘'에서 나오는 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노인들은 모토하시에게 마을을 떠나게 되면 더 이상 물을 되돌릴 수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그들은 샘물을 자신들의 생명을 기르기 위해서 빌려온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카메라는 마을 사람들이 매일 샘과 자신들이 사는 곳을 오가며 물을 길어 나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일상이었다. 샘물가에서는 계절마다 여러 다양한 의례들이 펼쳐졌다. 1월의 심자가 축일에는 각 가정마다 십자가를 만들고, 그것을 샘가로 가져와서 다른 집이 십자가와 교환한다. 또 그것을 물이 든 항아리에 넣어 집으로 가져가서 이따금씩 그 물로 집안을 정화하고, 병이 나면 물을 끼얹거나 마시기도 하면서 다음 십자가 축일까지 1년 동안 그것을 소중히 보관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나레이터인 알렉세이는 이렇게 말한다.

"내 안에는 샘물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샘물이 나를 이 곳에 머물게 하고 있다. 나의 마을에 나를 잡아두고 있다. 그래, 그런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과 물의 유대관계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유대관계를 '물은 빌려 온 것이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우리 신체의 60~70퍼센트는 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지구는 물의 행성이라 일컬어지는데, 지구의 물 가운데 해수가 97펴센트, 담수는 3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리고 담수 가운데 대부분은 빙하나 지하 깊숙이 들어 있어서 실제로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물은 극히 적다 하겠다. 지구의 물을 한 양동이로 생각했을 때, 우리가 쓸 수 있는 물은 한 스푼의 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을 우리 모두 돌려가며 함께 나누어 쓰고 있다. 그러니까 물을 내 마음대로 쓴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구의 물을 빌려 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만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3천만 종의 생물과 과거에 살았던 무수한 생물들이 모두 함께 사용해 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알렉세이와 샘> 속에서 우리는 평소에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시간과 만나게 된다. 그 샘물은 생물학적 시간과 지질학적 시간 모두를 포함한 유장한 시간을 흐르면서 지금도 그 곳에서 솟구쳐오르는 '슬로워터'인 것이다.

 

부지시체 마을 사람들이 그 곳을 떠나 살게 되면 아마도 병 속에 든 안전한 물을 마시게 될 것이다. 맑은 샘물이 없는 곳에서 사는 대다수 도시인들처럼 말이다. 도시인들은 샘 대신 '청량음료'가 샘솟는 냉장 기능의 자동판매기를 260만 대나 보유하고 있다. 우리들은 대규모 상하수 시스템과 화학처리 시스템을 갖추고 상품화된 '패스트 워터'의 시대에 살고 있다.

 

21세기를 물의 세기라고 한다. 이제까지의 전쟁이 석유 같은 화학 연료를 둘러싼 것이었다면, 이제부터의 전쟁은 물을 둘러싼 것이 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지구를 둘러싼 거대한 물 순환의 고리와 그 유장한 시간에 제대로 순응하는 삶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경제, 군사, 화학기술의 힘으로 확보되어 수송되는 페트병 속의 시간에 자신들의 생명을 맡길 것인가. '슬로 워터'와 '패스트 워터',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차이의 문제는 아니다. 바로 우리들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정신적이고도 문화적이며 영구적 구별인 것이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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