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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산책 제64장... "그 평안할 때, 그 위급해질 때를 대비하기 쉽다" 본문

초원산책

초원산책 제64장... "그 평안할 때, 그 위급해질 때를 대비하기 쉽다"

독립출판 무간 2018. 11. 2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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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안其安, 이지易持. 기미조其未兆, 이모易謀. 기취其脆, 이반易泮. 기미其微, 이산易散. 위지우미유爲之未有. 치지우미란治之未亂. 합포지목合抱之木, 생어호말生於毫末. 구성지대之臺, 기우누토起于累土. 천리지행千里之行, 시어족하始於足下. 위자爲者, 패지敗之. 집자執者, 실지失之. 시이성인무위是以聖人, 無爲. 고무패故無敗. 무집無執. 고무실故無失. 민지종사民之從事, 상어기성常於幾成. 이패지而敗之. 신종여시愼終如始, 즉무패사則無敗事. 시이성인是以聖人, 욕불욕欲不欲, 불귀난득지화不貴難得之貨. 학불학學不學, 복중인지소과復衆人之所過. 이시만물지자연萬物之自然, 이불감위而不敢爲.

 

그 평안할 때, () 위급해질 때를 대비하기 쉽다. 그 기미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 () 어려워질 때를 대비하기 쉽다. 그 연약할 때, 나누기 쉽다. 미미할 때, 흩기 쉽다. 아직 평안하고, 기미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 그것을 일삼아라. 아직 연약하고, 미미할 때, 그것을 다스려라. 아름드리나무는 작은 싹에서부터 자라난다. 구층 누대는 한 삼태기의 흙에서부터 세워진다. 천리 길은 한 걸음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일부러 일삼는 사람은 그것을 어그러뜨린다. 일부러 일삼아 잡아끄는 사람은 그것을 망가뜨린다. 그러므로 성인은 일부러 일삼음이 없다. 그러므로 어그러뜨림이 없다. 일부러 일삼아 잡아끎이 없다. 그러므로 망가뜨림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나 이미 위급해지거나 기미가 드러나거나 딱딱해지고 강해지거나 뚜렷해져서야, 극복하고자 하거나 해결하고자 하거나 나누고자 하거나 흩고자 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어그러뜨리게 된다. () 끝을 삼가기를 () 시작처럼 하면, 사안을 어그러뜨림이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사람들이 일삼고자 하는 바를 일삼고자 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일부러 일삼아 얻고자 하는)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보통 사람들이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을 배우며,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잘못된 바를 되돌리는 것이다. 만물은 스스로 그러한 바를 따름을 믿어서, (그것을) 감히 일부러 일삼지 않는 것이다.

 

 

“() 끝을 삼가기를 () 시작처럼 한다는 말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는) 시류를 따라가거나 (그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따르는 것으로서의 근본이 아닌 일부러 일삼고자 함이나 일부러 일삼음을 따르는 것으로서의) ‘말단을 쫓아가지 않는다는 뜻이고, 살아가되 (근본저절로 그러한 바’, 본성, 본성의 명령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愼終如始, 言不隨流逐末, 而動而反也)

 

해 설

이 장에서, 노자가 말하는 도는 만물 또는 세계에 대한 상징으로서, ‘스스로 생겨나’ ‘저절로 그러한만물 또는 세계의 관계적·변화적 양태와 자기 원인적 내지 자기 충족적 양식을 압축해 놓은 기호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첫째 以輔萬物之自然, 而不敢爲는 제1常道常名에서 , 4장의 似萬物之宗似或存”, 6장의 綿綿若存用之不勤”, 14장의 混而爲一”, 21장의 其中有象”, “其中有物”, “其中有精”, “其名不去”, 25장의 有物混成”,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32장의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與江海”, 34장의 大道氾兮! 其可左右”, 40장의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42장의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51장의 夫莫之命而常自然”, 54장의 子孫以祭祀不轍”, 59장의 是謂深根固柢, 長生久視之道등과 의미가 통하기 때문이고, 둘째 以輔萬物之自然, 而不敢爲에서 以輔萬物之自然은 만물에게 자연自然이 내재되어 있음을 전제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며, 셋째 만물이 자연을 내포하는 것이라면 땅도 자연을 내포하는 것이고, 하늘도 자연을 내포하는 것이므로, 노자가 제25장에서 말한 人法之,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의 의미는 사람도 자연을 따르고’, ‘땅도 자연을 따르며’, ‘하늘도 자연을 따른다는 의미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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