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왕필산책 : 도덕경 제35장 왕필주 "큰 형상을 붙잡고 있으면, 천하가 따르게 된다" 본문
제 35 장
집대상執大象, 천하왕天下往.
왕이불해往而不害, 안평태安平太.
락여이樂與餌, 과객지過客止. 도지출구道之出口, 담호淡乎! 기무미其無味. 시지視之, 부족견不足見. 청지聽之, 부족문不足聞. 용지用之, 부족기不足旣.
큰 형상을 붙잡고 있으면, 천하가 따르게 된다.
따르지만 해롭지 않고, 크게 평안하다.
음악과 음식은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그러나) 도道가 뱉는 말은 담백하다! 그 맛이 없다. 그것을 보더라도 보기에 부족하다. 그것을 듣더라도 듣기에 부족하다. 그것을 쓰더라도 쓰기에 부족하다.
執大象, 天下往.
“큰 형상大象”은 하늘형상의 어미이다. 차갑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으며, 서늘하지도 않다. 따라서 만물萬物을 품어서 아우른다統. (만물을) 가로막거나(犯; 禁 : 제10장 왕필주) 다치게 하는傷 바가 없다. 만약, 임금主이 그것을 “붙잡으면”, “천하가 (저절로) 따르게 된다”(大象, 天象之母也. 不寒, 不溫, 不涼. 故能包統萬物. 無所犯傷. 主若執之, 則天下往矣).
【해 설】
노자가 말한 “大象”은 “도道”를 비유하는 데, 다음의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만물에게 “흘러넘쳐서 미치지 않는 데가 없는(道氾濫. 無所不適 : 제34장 왕필주)” 만물의 ‘존재적’ 근원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만물에게 “두루 다니며 일삼아 이르지 않는 데가 없는(周旋而用, 則無所不至 : 제34장 왕필주)” 만물의 ‘작용적’ 근원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자와 왕필이 말한 “執”은 “따른다(均 : 제32장)”는 의미이다.
왕필주 “불한不寒, 불온不溫, 불량不涼”은 “치우치지 않는다(不偏 : 제32장 왕필주)”는 뜻으로서, “大象”은 만물을 “나누거나 가르지(分別 : 제20장 왕필주)” 않는다는 의미이면서,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欲 : 제1장)” “일부러 일삼지(爲 : 제2장)” 않는다는 의미이다.
왕필주 “포통包統”에서 包는 “품어서 안는다”(抱 : 제10장)는 뜻이며, 統은 “어우러진다”(通 : 제16장 왕필주)는 뜻으로서, 언제나 함께 있으며, 어디서나 함께 함을 의미한다.
왕필주 “소범상所犯傷”에서 所는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를 의미한다.
往而不害, 安平太.
(“大象”은 사물(things)이나 사건(event)과 같은) 형상形이 없(어서 살펴볼 수 없)다. (기미가 없어서) 알아차릴 수 없다. (사물이나 사건과 같이 그 형상이) 치우치지 않는다. (따라서 그 형상을 살펴볼 수 없다. 그 기미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따라서 그 기미를 알아차릴 수 없다) 따라서 만물이 (“大象”을) 따르는 데 있어서, 다치게 되거나害 가로막히지妨 않는 것이다(無形. 無識. 不偏. 不彭. 故萬物得往, 而不害妨也).
【해 설】
왕필주 “무형無形”과 “불편不偏”은 ‘존재’에 있어서 사물이나 사건과 같이 살펴볼 수 있는 형상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실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실재하지 않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왕필주 “무식無識”과 “불팽不彭”은 ‘작용’에 있어서 사물이나 사건과 같이 알아차릴 수 있는 기미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작용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작용을 하지 않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왕필주 “無形. 無識. 不偏. 不彭”은 (“大象”이) 만물을 “나누거나 가르지(分別 : 제20장 왕필주)” 않는다는 의미이면서,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欲 : 제1장)” “일부러 일삼지(爲 : 제2장)” 않는다는 의미이다.
왕필이 말한 것처럼 만물이 “다치게 되거나 가로막히지 않는不害妨” 것은 (“大象”은) 만물의 본성, 본성의 명령, 저절로 그러한 바에 따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도道는 저절로 그러한 바를 따르기(道, 法自然 : 제25장)” 때문이다.
樂與餌, 過客止. 道之出口, 淡乎! 其無味. 視之, 不足見. 聽之, 不足聞. 用之, 不足旣.
말하자면, 도道가 (뱉는 말은) 깊고 크다. (따라서) 사람이 도道가 뱉는 말言을 들으면, (아무 맛이 없어서) 이내 다시 (일부러 일삼은) ‘음악’을 듣거나 ‘음식’을 먹었을 때와 같이, 사람의 마음이 기쁘거나感 즐겁지悅 않다. (다시 말하면, 일부러 일삼은) ‘음악’과 ‘음식’은 지나가는 나그네(의 걸음걸이)를 멈추게 하지만, 도道가 뱉는 말言은 담백해서 (아무) 맛이 없다. (도道가 뱉는 말言은 깊고 크다. 따라서 일부러 일삼은 ‘음악’을 듣거나 ‘음식’을 먹었을 때와 같이, 사람의 마음이 기쁘거나 즐겁지 않다. 따라서 지나가는 나그네의 걸음걸이를 멈추게 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視之, 不足見”은 그 눈을 즐겁게悅 하기에 부족하다는 뜻이다. “聽之, 不足聞”은 그 귀를 기쁘게娛 하기에 부족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用之, 不足旣”는 그것을 보려고 해도 잘) 볼 수 있는 바가 없고, (그것을 들으려 해도 잘) 들을 수 있는 바가 없으며, (그것을 보아도 그 눈을) 즐겁게 하기에 부족하고, (그것을 들어도 그 귀를) 기쁘게 하기에 부족하지만, (도道가 뱉는 말言은 깊고 크며, 아무 맛이 없기 때문에) 이내 (다시) 그것을 쓰는 데, 멈춤窮이나 끝남極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言, 道之, 深大. 人聞, 道之言, 乃更, 不如樂與餌應時, 感悅人心也. 樂與餌, 則能令過客止, 而道之出言, 淡然無味. 視之不足見, 則不足以悅其目. 聽之不足聞, 則不足以娛其耳. 無所, 中然, 乃用之, 不可窮極也).
【해 설】
왕필이 말한, 일부러 일삼은 ‘음악’과 ‘음식’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거나 즐겁게 한다感悅人心”는 것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하고, 입맛을 망가뜨린다(令人耳聾, 令人口爽 : 제12장)”는 뜻으로서,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거나(使民心不亂 : 제3장)”, “미치게 한다(令人心發狂 : 제12장)”는 의미이다.
왕필주 “용지用之, 불가궁극不可窮極”에서 窮과 極은 用을 대상으로 삼고, 不可는 窮과 極을 대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不可窮極은 ‘씀을 멈출 수 없고, 씀을 끝낼 수 없다’는 뜻으로서, ‘멈춤이 없이 쓸 수 있고, 끝남이 없이 쓸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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