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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물공장 이야기꾼, 지금껏 없던 글을 쏟아내다

독립출판 무간 2018. 3. 6. 20:07


주물공장 이야기꾼, 지금껏 없던 글을 쏟아내다


 

10년 동안 서울 성수동의 지하 공장에서 김동식씨는 뺑뺑이를 돌렸다. 원심동력기와 금형 틀을 돌리며 그가 만든 건 단추만이 아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문 이야기, 이야기들. 1을 마지막으로 학교에 간 적 없지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경험을 350편의 짧은 소설로 지어냈다. 그에게는 세상이 선생님이었다.

32, 전국 초··고등학교가 입학식을 가졌다. 하지만 김동식(33)씨는 20년 전 중학교 1학년을 마지막으로 학교를 가지 못했다. 아니 가지 않았다. 형편도 어려웠지만, 공부를 못해서든 결석 때문이든 혼나는 게 싫었다. 못하는 것 때문에 혼나느니 아예 안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PC방을 전전했고, 스무 살 무렵부터 서울 성수동 아연 주물공장에서 10년 넘게 국자를 잡았다. 500도 넘는 액체 아연을 국자로 떠서 금형 틀에 부었다. 첫 달 월급 130만원. 빙글빙글 도는 틀에서 굳은 아연은 단추와 지퍼, 때로는 구두 장식이나 허리띠 장식으로 바뀌었다.

 

공장 생활 10년이 지나며, 단추나 지퍼 말고 동식씨가 만든 게 하나 더 있다. 이야기다. 낮에는 아연물 국자를 잡고, 밤에는 키보드를 잡았다. 일하며 듣던 SBS 라디오 '두시 탈출 컬투쇼'에 보낸 사연이 뽑히자, 약간의 자신감도 생겼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짧은 소설을 지어 올렸다. 처음엔 맞춤법도 엉망진창이었다. 선의의 댓글을 학교 선생님 강의처럼 받들었고, 포털사이트에 '글 잘 쓰는 법'을 검색해 따라 했다. 그 앞뒤로 중졸 검정고시와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201611월에는 공장도 그만뒀다. 마지막 월급은 180만원. 그리고 자신의 반지하 방에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지었다.

 

무명작가 김동식의 소설이 화제다. 작년에는 온라인에서 화제였고, 종이책으로 나온 올해는 오프라인에서도 돌풍이다. 그가 처음 글을 올린 인터넷 공간은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200자 원고지 20~30장 분량의 짧은 소설이었다. "재미있다"는 댓글 응원이 괴력의 생산성을 낳았다. 평균 이틀이나 사흘에 한 편, 그렇게 16개월 동안 350여편을 지었다. 원고지 1만장, 장편 소설 10권 분량이다. 그의 인터넷 독자 중에 현대소설 전공자이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등을 쓴 김민섭(35)씨가 있었다. 김씨는 조심스럽게 자신과 인연이 있던 출판사에 이 무명작가를 연결했고, 출판사 대표인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모험을 시도한다. '이름''족보'도 없는 무명작가의 단편을 묶어 세 권 동시에 출간한 것.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 (이상 요다)가 그 제목들이다. 두 달 만에 5쇄를 찍었고, 2만부가 나갔다. 이달 중에 4권과 5권도 출간할 예정. 1만부 작가도 희귀한 요즘 출판 시장에서 이례적 성공이다.

 

평생 글 쓰는 법이라고는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다는 청년을 소설가로 이끈 힘은 무엇이었을까.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인 이 청년에게 사회는 무엇을 가르쳤을까. 책 안 읽기로 이름난 한국 독자들은 왜 이 무명작가의 책을 사는 것일까.

 

http://v.media.daum.net/v/20180306180528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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