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내가 생각하는 "인드라망", "생명평화", "자비", "인연"... 상태에 대한 형용이다! 본문
요즘... 정리해 본 건 이렇다. '생명의 생과 명, 그리고 평화의 평과 화는 형용사이다.' 생=(자신이) 가지고 나온 상태, 명=(누구로부터) 부여받은 상태, 평=누구나 그러한 상태, 화=어우러져 있는 상태. 따라서 생명은 '본래, 이미' 등으로 풀이할 수 있겠고, 평화의 평은 '만물, 존재' 등으로 풀이할 수 있겠으며, 화는 '연결, 관계' 등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나는 '본래', '만물', '연결'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생명평화=만물이 본래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형용한다. 명사화한다면, 만물이 본래 연결되어 있는 모습=생명평화인 셈이다. '인드라망=생명평화'라고 생각한다.
생명평화에서 자비와 인연이 유발되었으며, 생명평화가 그러하듯이 자비와 인연 역시 그러한 상태에 대한 형용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비는 그렇게 되면 좋다는 도덕적 요청이나 그렇게 해야한다는 당위적 명령으로 볼 수 없다. 인연은 결정론적이거나 필연론적인 명제로 볼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이 감각, 지각, 의지, 행위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추구하거나 사회적으로 지향하는 욕구나 가치, 목표나 이상 등이 반영된 기준에 따라서 다른 것으로부터 어떠한 것을 나누어 내거나(분) 가려내는(별) 일이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도덕경 '무위'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러나 '상태'는 '그러한 것'이다. 그 자체다. 콩을 심었는데 콩이 나왔다면 그것 역시 그러한 것이고,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나왔다면 그것 역시 그러한 것이며, 콩을 심었는데 어떠한 것도 나오지 않았다면 그것 역시 그러한 것이다. (도덕경 '자연'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 때... '회의'에 빠질 수 있는데, '처음'으로 돌아가 극복해야 한다. '만물은 본래 연결되어 있다.' 그러한 것이라고 할 때의'그러하다'는 것에는 '연결'이 전제되어 있다. 감각, 지각, 의지, 행위에는 '연결'이 전제되어 있다. 콩이 나오든, 팥이 나오든, 어떠한 것도 나오지 않든, 그 '콩'은 '본래 연결'되어 있었고, '연결된 채' '나왔으며', '콩' '팥' '어떠한 것도 아닌 것'은 '연결되어' 나온 것이다. (콩, 팥, 어떤 것도 아닌 것이 방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불교가 마음에 든다. 만물이 본래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는... 분별이 없는 감각, 지각, 의지, 행위를 강조하는 것일 수 있고, 그렇다면 그것은 개체의 자율성 내지 주체성, 다양성을 무한히 긍정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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