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풀들과 화해하기 : 마음씨 고운 풀 같은 사람들이나 모임이 있어서 불화가 있는 곳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본문

풀꽃세상야

풀들과 화해하기 : 마음씨 고운 풀 같은 사람들이나 모임이 있어서 불화가 있는 곳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독립출판 무간 2016. 11. 6. 14:03

가을이 깊어간다. 밤이면 소나기가 내리듯 후둑후둑 바람에 날려 감잎 떨어지는 소리가 달빛 사이로 봉창에 스미더니 이제 헐벗은 나무에 빨갛게 익은 감들이 찬 서리에 시린 몸을 웅크린다.

지난 봄과 여름 사이에 참 많은 탐을 흘렸다. 그렇게 살갗을 익히며 타고 흐르던 땀방울 가운데 어떤 것은 곡식이나 남새에 스며 밥상으로 되돌아오고, 어떤 것은 땅에 스며 내년 농사를 기다리고, 또 어떤 것은 때 아닌 비바람과 가뭄에 헛되이 흩어졌다. 간혹 가슴에 맺힌 채 밖으로 흐르지 못하고 응어리가 된 것도 있다.

한편으로는 풀들과 화해하는 길을 찾으며, 또 한편으로는 꼭 같은 풀들을 상대로 싸우면서 사람들이 사는 세상살이도 비슷함을 느낀다. 사람들이 사이좋게 더불어 사는 길은 풀들이 오손도손 함께 발돋움하여 너도나도 알찬 열매를 맺는 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싶다. 지난 봄 여름에 얼마나 많은 땀이 풀들을 화해시키는 데에 바쳐졌는지, 돌이켜보면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풀들이 그냥 잡초만으 아님을 깨닫는 소득은 있었지만 그것은 반만의 깨우침에 지나지 않았다. 잡초가 잡초임을 깨닫는 것도 소중한 일깨움이라는 생각은 뒤늦게 떠올랐다.

화해는 서로 다른 둘 이상의 살아 있는 것들 가운데 이루어진다. 갈등이나 싸움이 그러하듯이 싸우고 맞서는 당사자들이 직접 마음을 풀고 화해하는 모습은 얼마나 보기 좋은가. 그러나 그게 그렇게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게 세상살이다. 풀들을 빗대어 이야기하자면 당근이나 감자와 바랭이풀을 화해시키기는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것이다. 마늘을 뽑고 난 뒤에 잠깐 묵혀둔 빈 터에 돋아난 바랭이는 발효식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어 귀여워보였다. 그러나 고추밭에서 자라는 놈들은 어찌 그리 미워 보이던지! 고추 모종이 먹고 자라야할 퇴비를 몽땅 자기만 훔쳐먹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쩌자고 햇볕과 바람마저 가려 아예 고추모종이 노랗게 시들도록 만든단 말인가.

이렇게 우리가 애써 기르는 풀과 뿌리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자라는 풀들 사이에 서로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기르는 풀' 편이 된다. 이런 걸 일러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던가? 땡볕에서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 바랭이 풀을 뽑노라면 가끔 엉뚱한 생각이 떠오른다. 고추와 바랭이가 서로 사이좋게 자라면 오죽 좋아. 이 생각이 가당찮음을 알기에 곧 다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이 두 풀둘 사이에 다른 풀이 끼어들어 둘 다 서로 해치지 않고 잘 자라게 화해를 시킬 수 있다면.

실제로 그런 풀들이 없지 않음을 안다. 볍씨가 자랄 틈서리를 남기지 않고 온 논에 빼곡이 들어차는 독새풀 사이에 들어 지나치게 자라는 것을 막는 자운영. 이른 봄부터 밭이랑에 뿌리로 잔 그물을 쳐서 남새나 곡식이 자랄 자리는 비워두는 살갈퀴...

서로 자기만 살겠다고 날카롭게 잎들을 칼날로 세워 맞서는 풀들 사이에 들어 함께 너도나도 잘 자라게 하는 중매쟁이 풀들을 찾아내는 일이 어찌 한두 해 노력으로 열매을 맺으랴. 그러나 그 일을 게을리하면 흘리는 땀방울 가운데 얼마나 많은 양이 바람에 흩어져버릴 것인가.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해서 어찌 다르랴. 사이 나쁜 이웃, 갈라서서 형제의 가슴에 총부리를 들이댈 수밖에 없는 갈라진 세상, 죽기 아니면 살기로 서로 제 밥그릇 키우기에 여념이 없는 국가들 사이에 마음씨 고운 풀 같은 사람들이나 모임이 있어서 불화가 있는 곳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을걷이가 끝난 저 들판에서는 이제 모든 풀들이 다시 새 봄을 기다리고 있는데...!

(윤구병, 잡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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