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스타족발" : 하루 7시간, 주 6일 장사, 월매출 1억 4000만원! 본문
“스타족발” 사장 이효찬씨, 이제 그는 3개 매장을 가진 사장이 됐다.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루 7시간·주 6일 장사해서 월매출 1억 4000만원.
쉼 없이 아르바이트를 한 이유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가수 ‘비’처럼 월드스타를 꿈꿨다. 그러나, 재능이 없었다. “23살 때, 홍대 공연장에서 노래를 했어요. 관객표정을 보고 알았습니다. 제가 음치였더라구요. 하지만, 고칠 수 있다 생각했어요.” 음악을 배우려면 돈이 필요했다. 조개구이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막노동∙김밥장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2011년 호주로 갔다. “꿈이 컸어요. 월드스타가 되려면 세계무대를 밟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타일을 붙이고 김치 공장에서 일했다. 호주간 지 9개월 만에 포기했다. 외국 간다고 없던 재능이 생길 리 만무했다. 한국에 돌아오니, 어느덧 20대 후반.
20대 초중반을 되돌아봤다. 떠오르는 건 아르바이트 경력 뿐. 적성을 직시했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을 구별하기로 했다. “서빙을 하거나 벽돌 나를 때 재미있게 했어요. 빨리 배워서 능숙한 편이었고요. 사람 많이 만나고 활동적인 요식업으로 목표를 전환했어요.”
호주에서 일할 때 인상 깊었던 “족발”이 떠올랐다. 호주 사람은 족발을 먹지 않는다. 하지만, 이 씨가 식재료 “오향”을 넣어 삶아주니, 현지인·유학생들이 좋아하며 잘 먹었다. 일단, 잘한다는 곳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2013년 서울시청 근처 3대 족발집 중 한 곳이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제가 특이해 보일지 몰라요. 누구보다 실패를 많이 경험했죠. 호주에서 있을 때는 일 못한다고 뺨 맞고, 정강이도 차였어요. 온통 부정적인 사건뿐이었죠. 하지만, 좌절만 하고 있을 순 없었어요. 환경이 저절로 바뀌는 것도 아니구요. 제가 바뀔 수밖에요.
아르바이트는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하다. 자격지심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씨는 아르바이트에 소명의식과 철학을 부여했다. 그가 서빙으로 이름 날린 비결은 세 가지다.
첫째, 시키지 않은 일을 나서서 했다. 이 씨가 일하던 족발집은 하루 대기 번호표가 230번까지 나갔다. 기다리던 손님들은 10분 단위로 다가와 ‘언제 들어갈 수 있느냐’,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었다. 대기시간을 지루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했다. 손님들의 정신을 다른 데로 집중시킬 방안을 고민했다. “대기 손님에게 신청곡을 받아 음악을 틀기 시작했어요. 반응이 좋았죠. 손뼉 밀치기 등 가벼운 게임을 제안하고, 손님이 데려온 아이들의 장기자랑도 진행했어요. 팔씨름 대회를 열어 우승자에게 中자를 大자로 바꿔주기도 했습니다.” 과학적인 접근도 해봤다. 반복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었다. 가게 문을 연지 2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둘째, 한시도 가만 있지 않고 매장을 돌아다녔다. 손님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말 뿐 아니라 눈빛과 손짓, 얼굴 움직임까지 의미를 읽어냈다. 손님이 “괜찮다”고 말할지라도 머뭇대며 올라가는 입꼬리를 놓치지 않았다. 더 필요한 건 없으신가요? 어린 시절부터 몸이 불편한 부모님을 지켜보며 체득한 습관이었다. 물이 떨어지면 물병을 대령하며 손님이 두 번 이상 부르지 않도록 했다. 유쾌한 인사와 멘트도 곁들였다. “1급 청정수 대령이요”, “오늘 열심히 일한 당신에게 선물하세요, 비빔국수!” 한 그릇도 팔기 힘들던 5000원짜리 후식용 비빔국수가 멘트 이후 100그릇이 나갔다. 모두가 좋아하진 않았다. 어떤 손님은 ‘왜 이렇게 오바하냐’고 면박을 줬다. 대화를 끊을 정도의 과도한 친절로 당황하는 손님도 있었다. 손님과의 접점이 생길 때만 말을 꺼내기로 했다. “1급 청정수 대령이요”란 멘트를 멀리서 크게 하는 게 아니라, 물병을 테이블 위에 놓는 순간 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디테일에 더 공을 들였다. 음식을 내려놓을 때 팔의 각도, 컵을 건네 줄 때 손의 위치 등을 세심하게 신경 썼다. “사람들은 디테일에 감동해요. 이렇게까지 서빙하는 사람이 없으니 모두가 좋아했죠.”
셋째, 아르바이트라고 하찮게 여기지 않았다. 스스로 '단지 고용된 사람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되뇌었다. 소위 말하는 진상 손님을 만나도 향후 사업을 도모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라고 생각했다. '이런 손님이 있구나'하며 내성을 키웠다. 사장 덕이 크다. 족발그릇이 하나에 10만원이 넘어요. 한 번은 여러 개를 동시에 들고 가다 와장창 깨트렸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며 큰소리 내지 않았어요. 그 때 감정 다스리는 법을 배웠어요. 독특한 서빙이 입소문을 타더니 스타덤에 올랐다. 스카우트 제의가 밀려 들었다. 명함을 많게는 한 달에 50장씩 받았다. 모두 거절했다. 돈만 쫓는 건 의리를 저버리는 일이라 생각했다.
창업을 준비했다
요식업 사장들을 만나 조언을 받기도 했다. 드디어 창업. 그런데 선택이 이상했다. 친구와 동업으로 세차장을 열었다. 보기 좋게 실패했다. 아르바이트와 사업은 차원이 달랐다. 전 재산 4000만원을 날렸다.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족발로 승부를 보기로 한 것. 지인에게서 5000만원을 투자받아 2014년 3월 단국대 근처에 ‘스타족발’을 열었다. 20평짜리에 테이블은 10개를 뒀다. 잘 아는 곳으로 돌아왔지만 생각만큼 풀리진 않았다. 족발 가게는 경쟁이 치열했다. 좋은 재료만으로 주목받기 어려웠다. 결국 투자자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한 달 만에 자금을 회수했다. 부랴부랴 1억원 빚을 냈다. 회당 120만~200만원을 받는 강연을 한 달에 30번씩 돌며 적자를 메웠다.
차별화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족발이 나오기 전 감자튀김을 서빙해 지루함을 없애기로 했다. 손님의견도 반영했다. 고추간장·마늘·흑임자 등 소스를 30번 넘게 바꿨다.
토핑을 시도했다. 손님 앞에서 족발 위에 새하얀 치즈를 부었다. "맛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소셜미디어에 올릴 수 있도록 비주얼이 좋아야 해요."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치즈폭포'라 불리며,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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