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백사람의 십 년" : 인간이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의 오만, 지금 우리는...? 본문
중국 문화혁명 10년 민초의 증언/경험담 모집 신문 공고에 4000여 통의 편지 쏟아져
中 작가 펑지차이 100명 뽑아 연재, 이념 우선했던 시대의 傲慢 고발
백사람의 십 년 | 펑지차이 지음 | 박현숙 옮김 | 후마니타스 | 408쪽 | 1만7000원
100과 10. 두 숫자는 상징이다. 1966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무산계급 문화혁명'이라는 문건으로 시작했던 문혁(文革)은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면서 10년 만에 종결된다. 문혁 10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스스로 피해자의 한 사람이었던 톈진의 작가 펑지차이(74)는 1980년대 중반 지역 신문 '금만보'에 문혁 경험담을 찾는다는 공고를 냈다. 자신이 겪은 고초를 하소연할 데가 없었던 대중은 뜨겁게 호응했고, 전국의 신문사가 이 기획을 '이어달리기'로 받았다. 도착한 편지만 4000여통. 펑지차이는 이 중 100사람의 이야기를 뽑아 1986년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한국판에는 이 중 17명의 증언이 실려있다.
이 책의 핵심은 증언 그 자체. 조금 길지만 최대한 인용하는 이유다. 우선 첫째 사연부터. 1966년 당시 선진 일꾼으로 뽑힐 만큼 우수한 공산당 청년당원이었던 서른 살 여의사 A의 사례다. 과로와 간염으로 잠시 쉬던 A의 가족에게 문혁의 피바람이 들이닥쳤다. '자본가 집안'이라는 이유였다. 근거는 아래층에 남는 방 하나를 월세 줄 만큼 여유가 있다는 것. 덧붙여 A의 부친이 미국 간첩이라는 혐의가 추가됐다. 화가였던 부친의 작품 한 점이 1940년대 미국에서 전시됐다는 게 근거의 전부였다. 중학생 홍위병들은 매일 들이닥쳤고, 부수고, 때리고, 뒤졌고, A와 부모는 가죽 혁대로 두들겨 맞은 뒤 머리카락이 전부 잘렸다. 치욕과 모멸. 3일 동안 한 끼도 못 먹은 채 다음 날의 가죽 혁대를 두려워하던 세 식구는 중대 결심을 한다. "우리는 인민의 적이고, 주변에 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 없어지겠다"고 유서를 썼다. 이 결심에 이르기까지의 실랑이와 고민과 갈등은 생략하기로 하자. 부친과 모친은 먼저 죽여달라 다퉜고, 의사였던 A는 사과 깎던 칼로 아버지의 경동맥을 끊는다. 어머니와 A는 3층에서 투신. 부모는 모두 숨졌지만,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할까, A는 두 다리가 부러지고 살아남았다. 법정은 그에게 부친 살해 혐의로 무기징역 선고를 내렸다. A는 묻는다. "나는 아버지를 구한 것일까요, 해친 것일까요."
둘째 사연은 더 기구하다. 8년 동안 감옥에서 살았던 전직 초등학교 교사의 고백. 마오쩌둥을 진심으로 존경한 교사에게도 횡액이 닥쳤다. 마오 주석의 담력과 책략을 강조하기 위해 강의에서 인용했던 구절이 문제였다. 장제스의 백군(白軍)에게 쫓겨 마오가 도랑 속에 숨어 있었다는 내용이었는데, '위대한 지도자'가 어찌 밭고랑 사이에 숨느냐는 비난이었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책에서 본 내용이라고 해명했지만 출전을 찾아내지는 못했고, 그는 '반혁명 세력'으로 몰려 감옥에 갇혔다. 더 기막힌 사연은 이제부터. 그 구절이 적힌 책을 찾아오면 남편을 풀어주겠다고 했지만, 임신 6개월의 아내는 까막눈이었던 것. 글 못 읽는 아내는 무작정 도서관에 가서 아무 책이나 읽어달라 졸랐고, 화장실 바닥에서 주운 종이도 씻어서 읽어달라 졸랐고, 길 가는 초등생에게도 읽어달라 졸랐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편을 구하려고 폐지를 줍는 여자. 반은 정신이 나간 이 여자에게 더 큰 불행이 일어났다. 어느 날 집 아궁이의 불이 폐지로 옮아붙었고, 그녀와 어린 자식 둘 다 목숨을 잃었던 것. 정작 기적은 뒤늦게, 엉뚱한 곳에서 일어났다. 비보를 들은 남편이 감옥 화장실에서 목을 매려던 찰나, 찢어진 종이 한 장을 발견한 것이다. '엎드린 마오'의 내용이 적힌, 등사한 종이였다.
2016년은 중국의 문화혁명 50년이 되는 해다. 중국 정부 공식 발표로만 3만4800명이 죽었고, 70만명 이상이 박해를 받았다. 이 웃지 못할 희비극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농민과 일반 대중이 앞장섰다는 명분으로, 구습을 타파하고 관료제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전 세계 진보 진영과 좌파들이 문화혁명을 찬양하던 시절도 있었다. 미친 사람이 아니라면, 이제는 중국에서조차 '문혁을 찬성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는 세상이다.
인간이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의 오만. 문혁을 경험했던 중국의 장년층은 현재의 북한에서 과거 문혁 시절의 자신을 발견한다고 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이데올로기 목청을 먼저 높이는 우리 주변 목소리들은 어떨까.
중요한 것은 이념이나 대의명분이 아니라 각 개인이 실제 삶에서 어떤 성실한 태도를 보여주느냐 여부일 것이다. 유명한 사람들의 회고록이 아니라,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필부필부(匹夫匹婦)의 고백과 증언을 지금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http://media.daum.net/culture/newsview?newsid=2016072303042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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