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경험으로 알게 된 식재료 관리 비법 10가지 본문
식당을 운영하면서 점점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고객 앞에 내놓는 상품보다 그 상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판매를 해야 하는 완성품에 집중하는 게 당연하지만, 결국 상품도 만들어지는 과정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다. 식당에서 가장 중요한 식재료의 관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본다. 20년을 넘게 음식을 만들어온 나는 식재료가 음식의 맛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음식의 맛이 좋아야 식당도 살 수 있으니, 신선한 식자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식당의 구조 상 손님의 주문과 동시에 산지에서 식재료를 받아 조리하지는 못한다. 최대한 오랫동안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관하는 수밖에 없다. 어떤 식당도 식재료 관리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차피 해야 할 식재료 관리라면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식재료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민쿡만의 식재 관리 노하우를 공개한다.
음식의 생명과 같은 선입선출
선입선출. 먼저 들어온 것을 먼저 쓴다는 말이다. 4자 성어는 아니다. 어디선가 만들어졌겠지만, 식당에서 가장 적합한 표어이다. 요리사들조차도 이 부분을 가볍게 생각한다. 또 직원들이 가장 소홀히 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양배추는 냉장고에 두면 오래갈 것 같지만, 오래된 양배추를 채 쳐 물에 씻어내면 금세 색깔이 검어지고 맛도 단맛이 아닌 쓴맛이 강해진다. 돼지고기는 들어올 때 돼지고기의 특유 맛이 있지만, 냉장고에 숙성이 아닌 잘못된 보관은 돼지 냄새를 유발한다. 아무리 신선한 해산물도 바다에서 건져내면 그때부터 부패한다. 활어 또한 수족관에서 며칠만 투숙시켜도 살이 빠지고 상처가 나며 아가미에 충이 생긴다. 냉동 제품 또한 마찬가지다. 냉동실에서 몇 개월을 보관해도 상관없을 것 같은 냉동 면도 냉동실에 오래 두면 면의 탄력이 떨어지고 면의 수분이 날아가 뜨거운 물에 넣는 즉시 면이 풀어져 버린다.
이렇듯 생각보다 식재를 오래 보관하면 맛의 변질이 심해진다. 선입선출은 이런 보관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줄여주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선입선출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자칫, 냉장고의 한구석에서 6개월이 넘어 썩어버린 감자나 소스가 발견되지 않게 하려면, 업주는 이 선입선출이 매장 내에서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얼음이 없도록 냉동고를 청소해라
냉동고에는 얼음이 있으면 안 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할 것이다. 냉동고의 센서는 냉동고 내의 온도를 감지해 냉각을 작동시키는데, 냉동고의 청소가 이루어지지 않아 잔뜩 얼음이 생기면 센서는 감지가 둔해져 냉각기를 임의대로 돌린다. 그렇게 되면 얼음은 더욱 더 많이 생기고, 결국 냉동고의 식재는 일정한 냉을 받아 보관되는 것이 아닌, 그냥 얼음에 쟁여진 식재료가 된다. 모두 잘 알겠지만, 냉동 제품은 최소 18도 이하로 보관되어야만, 그나마 양질의 식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관리되지 않은 냉동고는 그 내부의 온도가 약 영하10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최소 주 1회 냉동고 내부의 얼음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그래야만 냉동 제품을 최상의 상태로 보관할 수 있다.
단독메뉴를 줄여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꼭 팔고 싶은 메뉴로 인해 다른 메뉴에는 하나도 쓰지 못하고, 단 한 메뉴에만 들어가는 식재료를 사용할 때가 있다. 물론, 시그니쳐 메뉴 때문에 피하지 못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런 메뉴를 여러 개 있다면? 재료 회전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 메뉴의 매출이 아주 많아 그 메뉴만의 식재료가 특별히 회전된다면야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피하는 게 상책이다.
주방 벽에 매뉴얼 붙이기 – 모든 업무의 매뉴얼화
메뉴의 조리법이 바뀌면 그 메뉴의 조리법에 익숙해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메뉴 개발의 주체인 주방장은 기억해서 그걸 잘 지켜나가지만, 그 외의 직원들은 별 관심이 없을 수 있다. 그러면 정해 놓은 조리법을 잘 지키지 않게 되고 맛은 들쑥날쑥하게 된다. 식당에서 업무를 지시할 때, 구두 전달은 상당히 위험하다. 한 번 말로 전달하고 2주쯤 후에 점검해보면 지나면, 전혀 딴 형태의 조리법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귀찮고 오래 걸리지만, 문서전달을 추천한다. 문서 전달은 전달력이 지속적이고 정확하여 인수인계 시간을 단축해준다.
매장 손님에게 보이지만 않는다면 되도록 업무 매뉴얼을 직원들이 보기 쉬운 곳에 붙이는 것이 좋다. 매뉴얼대로 조리되면 정량 정시 조리가 확립되어 불필요한 식자재의 낭비를 막고 오더 실패의 확률을 줄일 수 있다.
타이머와 계량컵의 위력 – 계량을 생활화하기
예전에 직원이 한창 늘어날 때 가장 많은 컴플레인이 메뉴의 양과 간(염도)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손맛이라고 생각해 감으로 주고 감으로 간을 봤는데, 부작용은 심각했다. 현재, 우리 주방에는 타이머만 15개가 있다. 모든 조리시간은 타이머에 맞춰져 있고, 소스와 배합은 모두 계량하여 진행한다. 이후, 간과 양에 대한 컴플레인의 약 80%가 줄었다. 매일 반복하는 사람의 감도 물론 좋지만, 그래도 계량과 타이머의 정확성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돈 벌어주는 정리정돈. 자나 깨나 정리정돈
전체 8.3평의 매장. 그 속에 2평 남짓의 주방에서 장사를 시작한 나로서는 지금의 매장은 공설운동장이다. (현재 주방과 창고를 합쳐 약 30여 평) 주방도 한도 끝도 없이 넓어 보인다. 하지만, 직원들은 바쁘면 항상 주방이 좁다는 불평을 한다. 그럴 때면, 난 다음 날 영업 중이어도 매장문을 닫고, 모든 기물과 식재료를 정리한다. 열 받은 날은 점심장사를 포기하고 한 적도 있다. 정리 정돈이 되어있지 않으면, 모든 일은 엉망이 된다. 사실, 정리정돈은 식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식당의 정리정돈은 없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조리시간을 단축하며, 인건비를 낮춘다. 또 식재료의 재고 파악이 정확해져 창고 내의 재고율을 감소시켜 최상의 재료를 공급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냉장고는 원형이 아니다. 무조건 사각 용기를 사용해라
전국의 어떤 냉장고에도 발견할 수 있는 원형 용기. 주방 전문가가 보기에는 사소하지만, 반드시 고쳐야 할 문제다. 원형 용기의 장점은 담거나 이동 등 조리에는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보관에는 꽝이다. 왜냐하면, 냉동고와 냉장고가 사각형이기 때문이다. 원형 용기를 냉장고에 넣어보면 냉장고의 귀퉁이 영역이 낭비된다. 또 원형 용기는 그 안에 식재료를 차곡차곡 쌓아 넣을 수 없다. 식재료들이 눌리거나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재고량의 가늠도 어렵게 만든다. 보통 아주머니들이 일하는 주방이 이 원형 용기를 많이 사용하는데, 반드시 보관 용기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사각 용기를 써야 한다.
식재료 자투리는 직원들이 먹는 건가? 버리는 부분을 최소화하라
가식부율이라는 단어가 있다. 식재료 전체 대비 먹을 수 있는 부위의 비율을 말한다. 예전에는 이 가식부율의 나머지 부분으로 직원 식사를 만들었다. 식당으로 들어오는 식재료는 대형 호텔이나 특수한 식당과 공장에서 완제품이 되어 들어 오는 것을 제외하고, 100%의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들어오는 게 극히 드물다. 대부분 못 먹는 부분을 제거하는 등 자체 손질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미숙한 조리실력으로 인해 가식부율이 현저히 떨어지기가 일쑤다. 일일이 그 양을 재가면서 장사할 수는 없다. 자투리를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활어나 참치 같은 고가의 식재는 버리는 부위를 줄이도록 손질하는 기술을 향상하고, 채소의 뿌리 부분이나 버리는 부분은 육수 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투리의 적절한 사용만으로도 1년에 몇 백만 원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정확한 조리 매뉴얼은 이런 가식부율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다.
버릴까 말까? 과감히 버리자
식당을 운영하면 어쩔 수 없이 멀쩡한데도 버려야 할 경우가 생긴다. 멀쩡하다는 말에는 최상의 상태는 아니라는 뜻이 담겨있다. 그럴 때 우리는 마음의 갈등을 겪는다.
‘써도 될 거 같은데… 좀 그런가? 괜찮겠지 뭐’ 이럴 때가 업주나 주방장에게 가장 위험할 때이다.
손님은 내 식당에 방문할 때 전문 요리사가 만들고 전문 서버가 서비스하는 음식을 정당한 금액에 먹고 싶어 한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재료를 쓰는 순간 자신의 자존심과 내 음식의 가치는 땅에 떨어진 것이다. 한 때는 나도 그런 갈등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갈등에서 벗어나야 내 음식에 내 이름을 걸 수 있다. 식재료의 상태가 손님이 없어서 최상이 아니라면 직원한테 인심 한 번 쓰면 된다. 그게 어렵다면 버려라. 그래야 냉장고에서 나가고 싶어 발버둥치는 다음 식재료를 자신 있게 쓸 수 있다. 단, 상태가 좋은 것을 함부로 버리거나 자투리를 함부로 버리는 행동은 강력히 제재해야 한다. 내가 식재료를 받들어야 직원도 식재료를 받든다.
구매 물품은 재고도 같이 표기하기
지금 내 식당에서는 재고를 파악하고, 식재를 주문할 때, 모두 문서로 만든다. 요즘에는 카톡으로 주문을 주고받아서 예전에 전화로 주문할 때와 달리 ‘주문을 했네 안 했네, 너무 많네! 적네’하는 등의 문제는 없어졌다. 밥도 먹기 어려울 정도로 바쁜 식당에서 식재료의 재고를 매일 모두 적어서 표기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적어도 당일 주문하는 식재료만큼은 재고와 구매 양을 함께 표시해야 한다. 그래야 매장 내의 재고를 확인할 수 있고,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과도한 식재 주문을 막아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식재관리 비법 노하우 10가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기본에 해당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식당을 해나가면서 조금씩 초심을 잃고 오로지 돈만 벌겠다는 욕심에 이런 기본들을 잊게 된다. 식당은 음식을 만들어 파는 곳이지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파는 곳이 아니다. 주인의 마음과 정성을 불어 넣지 않으면 손님은 곧 등을 돌리고 만다.
http://chefnews.kr/archives/1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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