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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라이프 : 시스템에서 플러그를 뽑고, 공동체에 플러그하기! 본문
환경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것, 그래서 인간을 포함하지 않은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반 일리히에 다르면, 환경이란 과거의 공유지, 즉 사람들이 일정 지역에 모여 살기 위한 기반이자 공동의 공간이다. 과거 각 가정은 주변 공유지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곳은 '공동체의 주거'라고 할 만한 공동 생활의 장이며 경제적 기반이기도 했다. 일본에도 과거 '입회지(일정 지역의 주민이 일정한 산림, 임야, 어장 따위에 들어가서 생산물 채취의 이권을 공동으로 얻는 곳)'가 있었고, '결(우리의 두레에 해당)'이나 '강(적금이나 융자 등을 위해 몇 사람이 모여 만든 계의 일종)' 등의 공동체적인 모임이 있었으며, 주거는 그 안에 유기적으로 편입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유지가 자원으로 여겨지고 상품으로 경제 시장에 편입되면, 공동체는 기반을 잃고 와해되며 각각의 가정은 고립된다. 그리고 그 곳에 몇 세대를 걸쳐 육성되어 온 '사는 기술(물이나 식량을 확보하는 기술, 폐기물을 흙으로 되돌리는 기술, 장작이나 숯 등의 에너지 원을 확보하는 기술, 여러 다양한 방재기술, 전통적 의료기술 등)'도 급속히 사라져가게 된다.
사람들은 소비자가 되어 거대한 시장 - 화폐경제 시스템 속으로 편입되고, 그러한 시스템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 곳에서는 '비와 이슬을 피하려는' 욕구조차도 경제학적으로 정의된 '필요'가 되며, 상품 가치를 띠게 된다. 주택은 전선, 가스관, 전화선, 수도관, 하수관 등의 다양한 선과 관이 깔리고, 그것이 연결되었을 때라야 비로소 주택이라 일컬어진다. 마치 수많은 관을 연결시켜야만 겨우 생명이 유지되는 '식물인간'처럼 말이다. 병원의 생명 유지 장치의 도움을 얻는 데 많은 돈이 드는 것처럼 근대적인 주택을 마련하는 데에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그리고 그 희소한 공간을 점유하기 위해서는 열띤 경쟁이 따른다. 그 경쟁에 참여하는 것조차 일종의 특권으로 인식되어, 설사 3대에 걸친 부채를 지게 된다 해도 경쟁에 참여하는 것을 감지덕지하게 여긴다. 실제로 대다수의 현대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는 특권 계급으로 규정하고, 집을 소유하는 데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왔다. 어쩌면 거기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정신이야말로 기적이라고조차 일컬어지는 일본 고도 경제성장을 떠받쳐 온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 주택은 여러 관으로, 선으로 연결됨(plug)으로써 비로소 주택이 된다. 그러한 주택에 갇혀 사는 우리 현대인은 또한 '플러그드(plugged)', 접속에 의해 삶을 지탱해 가는 처지인 것이다. 재미있게도 영어의 플러그란 말에는 'TV 등에서 상품을 요란스레 광고한다'는 의미도 있다.
'언플로그(un-plug)', 이반 일리히가 1970년대에 제창하고 그 후 한동안 잊혀진 것처럼 보였던 '플러그를 뽑는다'는 뜻의 이 말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물결이 전 세계를 뒤덮어 가고 있는 지금, 우리들 앞에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은 플러그를 뽑음으로써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를 조금씩이나마 줄여나가면서 자족적인 생활을 향해 걸음을 옮겨놓는 것이다. 또 남반구에 위치한 나라들에게는 세계화의 압력과 유호에 저항하여 자발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길을 고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행위들이 국제 사회에서 종종 규제의 대상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업사회 내부에서도 플러그를 빼는 일은 일탈 행위가 된다. 따라서 법적 혹은 사회적 규제를 받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을 각오하고, '사는 일'의 자유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사회 구석구석에서 발견되고 있다.
히피를 비롯하여 종교적 혹은 비종교적 공동체 운동, 반정부주의 혹은 사회주의적인 코뮨 운동 등의 집단적 언플러그가 있는가 하면, 방랑자, 은자, 은둔자 같은 개인적인 언플러그도 있다. 그러나 일리히도 지적했듯이 운동 차원의 언플러그에만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단순한 취미나 놀이, 도락이라 여겨지던 것 - 예를 들어 일요 목공이라든가 주말 정원 가꾸기 등에도 실은 중요한 가능성이 숨어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부분적인 플러그 뽑기의 경험을 통해 우리들이 무엇을 배워 나가는가'하는 점이다. 그리고 과거 플러그 되어 '편리'하고 '쾌적'한 현대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 이상으로 지금 우리들은 조금씩 생활의 기술을 회복해 가면서 생태계와 공동체에 새롭게 플러그되는 경험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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