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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관한 사업을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나 그룹이 자신의 가치와 의식을 분명하게 갖고 있어야 한다! 본문

먹는 이야기

음식에 관한 사업을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나 그룹이 자신의 가치와 의식을 분명하게 갖고 있어야 한다!

독립출판 무간 2016. 8. 10. 10:21

고대 문명에서 식초가 사용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살피다보면 모데나의 발사믹 식초가 얼마나 남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새삼스레 실감하게 된다. 이집트인, 중국인, 그리스인, 로마인들은 식초를 만들었고 양념, 음료, 약으로 쓸 줄 알았다. 중세의 연금술사이자 물리학자인 바실리우스 발렌티누스는 이렇게 썼다. "의학과 연금술에서 식초가 없다면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19세기 후반에 콜레라가 번졌을 때에도 과일이나 야채를 씻을 때 식초를 사용하라고 권장했다. 식초는 방역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방부제로도 쓰였다. 실제로 식초는 음식을 절일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대에는 식탁에 올리는 샐러드와 야채에 '기름과 식초'가 공식처럼 사용되어 드레싱한 음식과 조화를 잘 이루며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주장했지만, 오늘날 식초는 '고급요리'를 만들 때나 진가를 발휘하는 요소 정도로만 여겨지고 있을 뿐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데나의 발사믹 식초는 생산지역에서만 사용되는 제품이었다. 펠레그리노 아르투지의 고전 <식품학 및 요리법>에서도 발사믹 식초에 대한 언급은 전혀 찾을 수없고,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요리에 관해 여러 의견을 남긴 주방장 루이지 카르나치나는 아예 발사믹 식초의 존재조자도 모르고 있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모데나의 발사믹 식초는 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는 전적으로 <이탈리아의 요리> 덕분이었다. 이 책은 전통요리의 위대한 발굴자인 괄티에로 마르케시가 집대성한 요리책이다. 마르케시가 일단 유행을 시키면 그 제품은 곧바로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아 식탁에 등장했고, 세계적인 고급 메뉴가 되었다. 이처럼 인기가 수직 상승한 제품은 대부분 가정용 식품이었고, 결과적으로 자극 내 소매용이었던 제품은 세계시장을 겨냥한 제품으로 탈바꿈했다. 이런 변화는 매우 최근의 현상이다. '모데나의 발사믹 식초의 배합과 제조방법의 특징'에 관한 행정법령이 마련된 건 1965년의 일이다. 1979년이 되어서야 생산업자에 의한 식초제조협회가 결성되었고, 1983년에 이탈리아 농림부는 인증서를 발행했다.

 

전통적이거나 전형적인 제품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면 특별한 수요로 반응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러한 제품의 실제적인 시장을 개척하는 문제는 분명 생산 규모와 제품 보급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사회적, 문화적 요소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정이나 그 외의 장소에서 먹는 음식에 관한 사업을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나 그룹이 자신의 가치와 의식을 분명하게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발사믹 식초는 야채샐러드 같은 다이어트 식품에도 빠질 수 없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음식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발사믹 식초가 고정 팬을 확보하는 '컬트 제품'의 신분으로 격상된 것도 이처럼 양극단적인 측면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 같은 사례의 전형을 스와치 시계의 성공에서 찾을 수 있다. 스와치는 '대량화된 엘리트주의'라는 개념을 사회적 공감대로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대중에게 엘리트 체험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었다. 이것은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을 갖고 싶어하는 일반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하나의 속임수이지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인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진짜' 발사믹 식초는 여전히 재정적 자본뿐만 아니라 문화적, 미각적 자본을 가진 행복한 소수만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제품이기 떄문이다. 설명하자면 발사믹 식초는 슈퍼마켓에서 싸게 구할 수도 있지만, 특제품만 취급하는 명품점에 진열되는 고급 식품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제품은 비싸기 때문에 대개는 작은 병에 넣어 소량으로 판매하고 있다. 이 두 제품 사이엔 분명 건널 수 없는 깊은 골이 있다. 싼 것은 캐러멜 설탕이 첨가된 보통 와인식초이고 비싼 것은 12년 숙성시켰으며 25년 숙성시킨 최고급품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제품 자체의 품질 차이보다는 제품의 이미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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