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푸드 : 발사믹 식초...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그 이유는 한 두 가지가 아니가. '발사믹 식초'란 제품 자체가 개성적인 색과 향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우선 이 상표는 듣기에 기분 좋다. 게다가 그 독특한 뒷맛도 제품의 이미지를 좋게 하는 데 한몫을 한다. '발삼(향신료)'이라는 말은 자연과 천연의 향기로운 이미지를 생각나게 하며 왠지 몸에 좋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또렷하면서도 미묘한 그 향 떄문에, 발사믹 식초는 고기와 소스의 맛을 한층 돋워주고, 무엇보다도 다이어트 시대에 각광받는 샐러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사실 야채 소비의 증가로 신선하고 멋지게 드레싱한 야채샐러드가 출현한 것이 발사믹 식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발사믹 식초는 용도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칼로리가 적은 음식이므로 다이어트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음식 맛의 섬세한 차이를 음미하는 미식가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발사믹 식초는 너무 많이 넣어도 너무 적게 넣어도 안 된다. 생산자가 제시한 가이드와 매뉴얼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발사믹 식초는 용도가 다양하지만 다루기가 아주 까다롭다.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모르면 모든 것을 망치기 십상이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얼마나 사용하고 언제 사용할 것인지는 딱히 뭐라고 잘라 말할 수가 없다. 간단히 말해서 발사믹 식초는 자신의 손에서 모든 것을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솔로 연주가다. 그래서 제대로 맛을 보려면 처음에 티스푼으로 조금 맛을 본 후에 서서히 신맛에 동화되어야 한다. 특별한 용도에 얼마나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의 감각에 달려 있다."

 

발사믹 식초가 세계적인 식품이 된 것은 객관적 특성보다는 개성적인 맛 때문이었겠지만, 그래도 발사믹 식초는 신맛에 대한 미각적 숙련도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발사믹 식초가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특히 미국), 그리고 유럽국가(특히 독일), 그리고 일본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탈리아 어느 한 지방의 세련된 상품이 일반적인 기호에 맞았기 때문이다. 발사믹 식초는 국제적이면서도 지역 특성을 살리려고 애쓰며, 이국적이면서도 토속적이고, 원산지의 전형적 상품이면서도 전 세계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는 데 성공했다. 통념적인 지리학적, 미각적 국경을 넘어서 발사믹 식초는 가장 다양한 세계적, 전통적 요리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예를 들면 동양의 요리에서 발사믹 식초는 간장의 완벽한 대용품이며, 미국에선 바비큐 소스로 최고다. 북유럽 요리와도 잘 어울리며, 고기와 생선을 절이는 와인식초를 훌륭하게 보완해 주기도 한다.

현대 요리에서 발사믹 식초를 첨가한 아이스크림만큼 전형화된 제품의 성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또 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역사성과 현대성이 어우러지고, 절제와 과장이 혼합되고, 고급과 저가품이 함께 존재하고, 구하기 어려우면서도 가까운 곳에도 있는 바로 달콤쌉싸름한 그 맛이다. 모데나의 발사믹 식초가 모든 식초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디서나 누구든 자신의 전통을 창안해 낼 수 있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김종덕/이경남 옮김, 슬로푸드-느리고 맛있는 음식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