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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주 정노 79. 자기 마음대로 상대의 큰 원망을 풀게 되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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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주 정노 79. 자기 마음대로 상대의 큰 원망을 풀게 되면

독립출판 무간 2025. 4. 4. 22:25

제79장

 

 

和大怨, 必有餘怨, 安可以爲善. 是以聖人執左契, 而不責於人. 有德司契, 無德司徹. 天道無親, 常與善人.

(자기 마음대로 상대의) 큰 원망을 풀게 되면, 반드시 (상대의 마음이) 남아도는 원망을 가지는 바가 있게 되는데, (따라서 그것이) 어찌 (상대의 큰 원망을 풀기를) 잘한 바가 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성인은 (채무자인) 좌계左契를 (가진 사람의 입장을) 붙잡은 채, (채무를 변제하지 못한) 사람을 꾸짖지 않는다. (이른바) 덕스러움德을 가지는 바가 있는 사람은 (채무자의 입장에서) 계契를 살피고, 덕스러움을 가지는 바가 없는 사람은 (채무와 채권의 일치를 일부러 일삼아 지향하는) 철徹을 살핀다. (이른바) 하늘의 도道는 자기 마음대로 너그럽게 대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이, 늘 그러하게 (상대의 입장에서 그의 원망을 풀기를) 잘하는 사람과 더불어 한다.

 

 

修怨者, 凡人之恒情也. 不欲修而和之, 則亦可謂善矣.

(상대로 하여금) 원망을 (풀게 하기보다) 쌓게 하는 일, (이것이 지금 세상의) 보통 사람들이 늘 그러하게 마음 쓰는 바이다. (상대로 하여금, 원망을) 쌓는 바를 일삼고자 하지 않게 한 채, 그것을 풀게 하는 일, (이것이) 따라서 이른바 잘하는 일이라 일컬어질 수 있다.

 

然以和怨爲事, 是, 猶知怨之爲怨也. 是, 其心, 猶未能忘怨也. 外, 雖和之, 而其中, 必不能廓然. 故曰有餘怨.

이른바, (상대의 마음으로 하여금) 원망하는 바를 알아차리는 바를 일로 삼게 하는 것, 이것은 이른바 (상대의 마음으로 하여금) 원망하는 바를 알아차리게 하는 일이고, 원망하는 바를 일삼게 하는 일이다. 이것은 그 (상대의) 마음(의 안)이 이른바 원망하는 바를 잊을 수 없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상대의 마음의) 밖이 이른바 (원망하는 바) 그것을 풀게 되면, 그 (상대의 마음의) 안은 반드시 (원망하는 바를 알아차리거나 일삼는 바를) 또렷해지게 하거나 뚜렷해지게 하는 바를 잘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자기 마음대로 상대의 큰 원망을 풀게 되면, 상대의 마음은 반드시) 남아도는 원망을 가지는 바가 있게 되는데.”

 

是, 但賢. 于必欲報怨者而已. 未可以謂之善也.

(남아도는 원망을 가지는 바가 있는 상대의 마음) 이것은 이른바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상대는) 반드시 (마음의) 원망을 갚게 될 따름이다. (따라서 상대의 원망을 풀기를) 잘하는 일이라 일컬어질 수 없다.

 

契者, 取債之券也. 執契者, 可以責而不責. 以喩可以報怨而不報也.

계契는 (상대의) 채무(관계)를 기록한 문서이다. (그런데 상대의 채무관계를 기록한 문서인) 계契를 붙잡고 있는 사람은 (채무를 변제하지 않은 상대를) 꾸짖을 수도 있지만, 꾸짖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른바 (상대가) 갚는 바가 원망일 수도 있지만, 갚는 바가 (원망이) 아닐 수도 있게 된다.

 

蓋和者, 如今俗. 所謂私和. 雖折棄契券, 不訟于官, 而其心, 猶不能忘.

이른바, (노자가 살았던 당시, 상대의 원망을) 풀었던 사람(의 모습)은 지금의 (세상) 풍속과 더불어 같이 했다. 이른바, (그는) 자기 마음대로 (상대의 원망을) 풀었다. 이른바, (그는 상대의) 채무(관계)를 기록한 문서인 계契를 (자기 마음대로) 찢어 버린 채, 관청에 송사訟事하지 않았는데, 따라서 그 (상대의) 마음은 이른바 (그에 대한 원망을) 잊을 수 없게 되었다. 〔‘자기 마음대로’라는 말은 ‘일방적으로’, ‘일부러 일삼아’, ‘자랑하듯’ ‘우쭐하여’라는 뜻이다〕

 

有契, 而不以責, 則忘之矣. 是, 眞可以爲善矣.

(그러나 성인은 상대의 채무관계를 기록한 문서인) 계契를 가지고 있는 바가 있지만, (채무를 변제하지 못한 상대를) 꾸짖지 않은 채, 그것을 잊었다. 이것이 참으로 (상대의 원망을 풀기를) 잘하는 바를 일삼을 수 있는 모습이다.

 

無德司徹, 未詳.

덕스러움德을 가지는 바가 없는 사람은 철(徹; 채무와 채권의 일치를 일부러 일삼아 지향하는 일)을 살피는데, 상스럽지 못한 일이다.

 

吳幼淸曰, 契者, 刻木爲券. 中, 分之, 有左右. 各, 執其一. 而合之以表信. 史記云, 操右契, 以責. 則知左契, 爲受責者之所執矣. 執左契者. 己, 不責於人. 待人, 有持, 右契, 來合者, 則與之. 以其, 任人, 來取, 無心, 計較. 故曰有德. 古者, 九一而助, 八家, 同耕公田, 而各, 耕私田. 周人, 恐其所取之, 不均, 故改助爲徹, 令通力合作, 而均收之. 是, 患其不均, 而有心, 計較已. 故曰無德.

(따라서 중국 원元나라 때) 오징(吳澄, 1249~1333)은 (『도덕진경주道德眞經註』 제66장 주註에서) 일컬었다. “계契는 (계약 당사자 둘이 계약관계를) 나무에 새겨 만든 문서이다. 가운데가 (둘로) 나뉘는데, 좌左·우右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된다. (계약 당사자) 각자는 그 하나를 붙잡는다. 이른바, (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할 때, 각자가 붙잡았던 하나) 그것을 합쳐 (상호 간의) 신뢰의 표식으로 삼는다. 『사기史記』는 일컬었다. ‘우계右契를 붙잡은 사람이 이른바 (채무를 변제하지 못한 것을) 꾸짖는 (채권자이)다.’ 따라서 알아차리게 된다. 좌계左契는 (채무를 변제하지 못한 것에 대해) 꾸짖음을 받는 (채무자인) 사람이 붙잡는 (그 계契의 하나인) 바가 된다는 것을. (이른바, 예컨대,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좌계左契를 붙잡는 사람(의 입장)이 되었다. 그는 (채무자의 입장에 선 채, 좌계左契를 붙잡았던) 사람(이 채무를 변제하지 못한 것)을 꾸짖지 않았다. (그는) 기대었다. (좌계左契를 붙잡은) 사람이 (자신이 붙잡은) 우계右契를 지키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는 바를. (따라서 그는 좌계左契를 붙잡았던 사람이) 찾아왔을 때, (자신이 붙잡았던) 우계右契가 (좌계左契와 더불어) 합쳐지면, (변제된 채무를 일부러 일삼아 확인하지 않은 채, 자신이 붙잡았던 우계右契) 그것을 (돌려) 주었다. 이른바, 그는 말미암았다. (좌계左契를 붙잡았던) 사람이 찾아와 (자신이 붙잡았던 우계右契를) 얻어갈 때, (자신의) 마음이 (좌계左契를 붙잡았던 사람이 변제한 채무에 대해 일부러 일삼아) 재거나 견주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바를.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덕스러움德을 가지는 바가 있었다.’ (또한, 예컨대, 아주 먼) 옛날의 임금은 (정전제井田制를 시행하여, 총) 900무畝(의 논밭) 중 (공전公田) 100무畝에서 추수한 곡식으로써, (나라에) 조세를 내게 했고, 여덟 집이 공동으로 (100畝의) 공전公田을 경작하게 했으며, (여덟 집) 각자가 (100무畝씩 총 800무畝의) 사전私田을 경작하게 했다. (이른바, 아주 먼 옛날의 임금은 농사를 짓는 백성, 이른바 채무자의 입장에 섰다. 그러나) 주周나라의 임금은 (사전私田을 경작할 때와 공전公田을 경작할 때, 투입되는 백성의 노동력이 고르지 못하게 됨으로써) 그 (나라가 거두어) 얻는 바가 고르게 되지 않게 될 것을 염려했는데, 따라서 (그는) 조세 제도를 개혁하여, (비유컨대 채무와 채권의 일치를 일부러 일삼아 지향하는) ‘철徹’을 일삼은 채, (투입된) 노동력(力; 인구)이 (납부된) 조세와 (더불어) 일치되도록 (하는 조세 제도의 집행을) 명령하고 통솔함으로써, (나라가 조세) 그것을 거두어들이는 바를 고르게 했다. 이것은 그 (나라가 거두어들이는 조세가) 고르지 못하게 되는 바를 근심한 것이지만, (임금의) 마음이 (일부러 일삼아) 재거나 견주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는 (이른바 농사를 짓는 백성·채무자의 입장에 서는 제도가 아니라, 조세를 거두어들이는 나라·채권자의 입장에 서는) 제도였을 따름이다.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주周나라의 임금은) 덕스러움德을 가지는 바가 없었다.’”

 

陳深曰, 有德者, 主以契, 而無求索之心. 無德者, 以計較爲心, 必求明徹. 而後, 已也.

(중국 명明나라 때) 진심(陳深, 1260~1344)은 (『노자품절老子品節』 「하경下經 제42장」 주註에서) 일컬었다. “덕스러움德을 가지는 바가 있는 사람은 (좌계左契를 잡았던 사람이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찾아왔을 때, 자신이 붙잡았던) 계契를 주재하는 데 있어서, 이른바 (채무가 채권과 일치하기를) 바라거나, (일치하지 않는 바를) 찾는 마음을 가지는 바가 없다. 덕스러움德을 가지는 바가 없는 사람은 (일부러 일삼아) 재거나 견주는 바를 마음으로 삼은 채, 반드시 (채무와 채권의 일치를 지향하는 일인) ‘철徹’을 바라고, 밝힌다. 이른바, (좌계左契를 잡았던 사람이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찾아온) 다음의 (덕스러움德을 가지는 바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모습)이 이러할 따름이다.”

 

愚謂, 有德司契, 吳氏, 似長. 無德司徹, 陳氏, 稍通. 然俱, 有未甚瑩者. 姑缺之, 可也.

(나는) 어리석지만, 일컫는다. “유덕사계有德司契, 오징吳澄(의 주석)이 (보다) 뛰어난 듯하다. 무덕사철無德司徹, 진심陳深(의 주석)이 조금 더 어울리는 듯하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아주 밝지 못한 것을 가지는 바가 있는 듯하다. (두 가지 모두) 조금 빠뜨린 바가 있는 듯하다.”

 

無親, 無所私厚也. 善人, 常不與人計較. 宣其, 常屈於人矣. 然天道, 常與之. 亦不患其, 不能申也.

무친無親은 자기 마음대로 너그럽게 대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다는 말이다. (상대의 원망을 풀기를) 잘하는 사람은 늘 그러하게 상대가 (일부러 일삼아) 재어지고 견주어지게 되는 바를 더불어 하지 않는다. 마땅히, 그는 늘 그러하게 상대에게 휘어진다. 따라서 하늘의 도(道; 自然·性·無爲·德·命)는 늘 그러하게 그러한 사람과 더불어 하게 된다. 또한, (하늘의 도道는) 근심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이 (그러한 바를) 펼치(기를 잘하)지 못하게 될 것을.

 

夫怨之大者, 莫如後世朋黨之禍. 其, 務相報復. 以快己私. 而後已者. 固不足道也.

이른바, (상대의 원망이 풀어지게 하기보다, 상대의) 원망이 커지게 되었던 바, 후세의 붕당朋黨가 일삼았던 재앙만한 것이 없다. (이른바) 그들은 힘썼고, 더불어 했다. (원망을) 갚는 바가 되돌이켜지는 바를. 이른바, (그들은) 즐겼다. (상대의 원망을 갚는 바를)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 바를. 이른바, (비유컨대 좌계左契를 잡았던 사람이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찾아온) 다음(의 모습)이 그러했을 따름이다. 이른바, (그들은 하늘의) 도道에 충족되지 못했(을 따름이)다.

 

元祐之調停, 近世之蕩平, 所謂和大怨而有餘怨者也.

(중국 송宋나라) 원우元祐 연간(1086~1093)의 (신법新法과 구법舊法 양당兩黨 간의 분쟁과 보복을 화해시키고자 했던) 조정調停, (조선) 근세 (영조英祖 1724~1776 때)의 (노론老論과 소론少論 간의 당쟁黨爭을 조화시키고 했던) 탕평蕩平, 이른바 (자기 마음대로 상대의) 큰 원망을 풂으로써, (상대의 마음이) 남아도는 원망을 가지는 바가 있게 했던 일이었다.

 

夫唯超然獨立, 不知一身之恩讐, 唯以忠於君利於民爲心而已者, 其, 庶幾所謂善人者乎. 嗚呼, 吾, 未之見也.

이른바, 오로지 (상대의 원망을 푸는 바를 자기 마음대로 하는 바를) 넘어서고, 홀로 서며, (자기) 한 몸이 이쁨을 받거나 미움을 받는 것을 알아차리지 않는 채, 오로지 임금에게 충성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바를 (자신의) 마음으로 삼을 따름인 사람, 그는 아주 거의 이른바 (하늘의 도道를 일삼기를) 잘하는 사람이다! 오호, (그러나) 나는 (아직 그러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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