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홍석주 정노 70. 내가 하는 말은 아주 알아차리기 쉽고, 아주 일삼기 쉽지만, 천하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일삼지 못한다. 본문

카테고리 없음

홍석주 정노 70. 내가 하는 말은 아주 알아차리기 쉽고, 아주 일삼기 쉽지만, 천하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일삼지 못한다.

독립출판 무간 2025. 3. 26. 23:09

70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言有宗, 事有君.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知我者希, 則我貴矣. 是以聖人被褐懷玉.

내가 하는 말은 아주 알아차리기 쉽고, 아주 일삼기 쉽지만, 천하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일삼지 못한다. (내가 하는) 말도 (천하로 하여금, 열매 맺게 하고자 하는) 씨앗을 가지는 바가 있고, (내가) 일삼는 바도 (천하로 하여금, 열매 맺게 하고자 하는) 씨앗을 가지는 바가 있다. 그러나 이른바 (천하는 그것을) 알아차리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데, 따라서 나를 알아차리는 (바를 가지는) 사람이 없다. (천하에) 나를 알아차리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는) 사람이 드문데, 따라서 나는 귀하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의) 성인은 (보푸라기가 이는) 거친 삼베 옷을 입은 채, 옥玉을 (마음 가운데) 품었다.

 

 

老子之言, 雖若高遠微妙者, 其, 實. 不過二端. 欲使人, 內淸靜而寡慾, 外謙柔以下人而已. 此, 豈有難知且難行哉.

노자의 말은 뜻하는 것이 높고 크며, 딱히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말인 것 같지만, 그것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열매 맺게 하는 말(일 따름)이다. 이른바, 두 개의 씨앗을. (그것은 알아차리게 하고, 일삼게) 하고자 하는 말일 따름이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안으로 (유위有爲를) 맑게 하고, 조용하게 함으로써,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를 줄이는 것, 밖으로 (무위無爲를 자신의 위로 높이고, 자신을 무위無爲의 아래로) 낮추며, (무위無爲에 대해) 부드러워지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아래에 자리하는 것을. (따라서) 이것이 어찌 알아차리기 어렵고, 일삼기 어려운 바를 가지는 바가 있는 것이겠는가?

 

蓋此二端者, 寔五千言之宗, 而天下萬事之君也. 人, 唯無所知識, 故不能知此, 不能知此, 故亦不能行此爾.

(안으로 유위有爲를 맑게 하고, 조용하게 함으로써,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를 줄이는 것, 밖으로 무위無爲를 자신의 위로 높이고, 자신을 무위無爲의 아래로 낮추며, 무위無爲에 대해 부드러워지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아래에 자리하는 것) 이 두 개의 씨앗이 정말 (노자가 일컬은) 5,000 자字(가 당시의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으로 알아차리게 하고자 한 바)의 근본이며,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몸으로 일삼게 하고자 한 바)의 근본이었다. (노자가 살았던 당시의) 세상 사람들은 그러나 (이것을 마음으로) 알아차리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었고, 따라서 (이른바) 이것을 (몸으로) 알아차리지 못했으며, 이것을 (몸으로) 알아차리지 못했고, 따라서 이른바 이것을 (몸으로) 일삼지 못했을 따름이다.

 

褐, 毛布, 賤者之服也. 聖人中, 有至實. 而不衒于外. 此, 衆人, 所以不能知也. 若人人, 而知之, 則與譁世取寵者, 無異矣. 又安足貴哉.

갈褐은 (보푸라기가 이는) 거친 삼베 옷으로서, 천한 사람이 입는 옷이다. 성인의 가운데(中; 心)는 (무위無爲가) 지극한 보물(寶; 性·命·道·德·自然)을 가지는 바가 있다. 따라서 (성인은 일부러 일삼아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성인을 귀한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는 까닭이다. 만약, (성인이 자신이 가지는 바가 있는 보물을 일부러 일삼아 드러냄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일부러 일삼아) 자신을 알아차리게 한다면, (성인은 자신이 가지는 바가 있는 보물을 일부러 일삼아 드러냄으로써, 일부러 일삼아)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세상으로부터) 총애받는 바를 취하는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다른 바를 가지는 바가 없게 된다. 따라서 어찌 (세상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바를 충족하게 되겠는가?

 

吳幼淸曰, 旣已. 歎之. 又若幸之. 非幸之也. 深惜之爾.

(그런데 중국 원元나라 때의) 오징(吳澄, 1249~1333)은 (『도덕진경주道德眞經註』 제58장 주註에서) 일컬었다. “(지아자희知我者希, 즉아귀의則我貴矣는 노자의 탄식이다. (노자가 살았던) 당시, 세상 사람들은 (그 두 개의 씨앗에 대해) 어리석었는데, 따라서 (마음이 그것을) 알아차리는 바를 가지는 바가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노자의 말이 귀하게 여겨질 만한 바라는 것을. (노자가 살았던 당시, 세상 사람들은) 이른바 (그러할) 따름이었다. (따라서 노자는 그와 같이) 탄식했던 것이다. 이른바, 따라서 (지아자희知我者希, 즉아귀의則我貴矣는 노자는 저절로 그러하게 귀하게 되는 바를) 바랐다는 뜻이자, (일부러 일삼아 귀하게 되는 바를) 바라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른바) 따라서 (노자는 그와 같이) 아주 아쉬워했을 따름이다.”

 

愚謂, 聖人, 之道, 內足, 於己, 而外欲與天下, 共. 然人之知不知, 亦非我, 所能爲也. 故曰, 人, 不知, 而不慍, 不亦君子乎. 又曰,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나는) 어리석지만, 일컫는다. “성인은 자신의 도道가 이른바 저절로 그러하게 안으로 충족되게 한 채, 밖으로 천하가 (그러한 자신을) 더불어 하는 바를 (그러한 바대로) 더불어 하고자 한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그러한 성인을) 알아차리는 바와 알아차리지 못하는 바는 이른바 성인이 일부러 일삼기를 잘하는 바가 아니게 된다. 따라서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학이學而」에서) 일컬었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화내지 않는다면, 이른바 군자이지 않겠는가?’ 또한, (따라서 공자는 『논어』 「학이」에서) 일컬었다. ‘벗이 멀리서 찾아오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으니, 이른바 즐겁지 아니한가!’”

 

老子之言, 雖欲以警, 夫世之, 急於人, 知者. 然其, 弊, 則將未免於自私. 此, 君子, 所以謹, 夫豪釐也.

노자의 (지아자희知我者希, 즉아귀의則我貴矣, 이) 말은 이른바 삼가게 하고자 하는 말이다. 이른바, 세상이 (일부러 일삼아) 재빠르게 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는 것에 대해. 왜냐하면, (그것을 경계하는 바) 그것이 어그러지게 되면, 장차 (세상이 그것을 일부러 일삼는 바를) 저절로 그러하게 멋대로 하는 바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군자가 삼가는 까닭이다. 이른바, (자신의 보물을 일부러 일삼아 드러내는 바를) 많아지게 하고, 탐하는 바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