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하상공 노자도덕경 08 : 일삼음에 있어서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나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는 모습을 바꿈에 대해 논한다. 본문
하상공 노자도덕경 08 : 일삼음에 있어서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나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는 모습을 바꿈에 대해 논한다.
독립출판 무간 2024. 4. 13. 23:32易性第八
제8장, (일삼음에 있어서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나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는) 모습을 바꿈에 대해 논한다.
上善若水.
(일삼음에 있어서) 최상의 잘함은 물(의 모습)과 같다.
上善之人, 如水之性.
(일삼음에 있어서) “최상의 잘함”을 가진 사람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欲나 일부러 일삼는 바爲가 없는) “물水”의 모습과 같이한다.
水善利萬物而不爭,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기를 잘하지만,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나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음을) 다투지 않고,
水在天爲霧露, 在地爲源泉也.
“물水”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欲가 없는) 하늘(의 모습)에 자리함으로써, (“만물”이 목을 축이는) 이슬(霧露; 生命)을 일삼고, (일부러 일삼는 바爲가 없는) 땅(의 모습)에 자리함으로써, (“만물”이 입을 적시는) 샘물(源泉; 生命)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處衆人之所惡,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에 머무는데,
衆人惡卑濕垢濁, 水獨靜流居之也.
“세상 사람들”은 아래가 되거나, 축축하게 되거나, 티끌이 되거나, 탁하게 되는 바를 “싫어하지만”, “물水”은 (일부러 일삼아 “싫어하는” 마음을) 고요하게 한 채, 그러한 바에 흘러들고 자리한다는 것이다.
故幾於道.
따라서 (물이 일삼는 모습은) 도道(의 모습)에 가깝다.
水性幾於道同.
(이른바, 일삼음에 있어서) “물水”의 모습은 “도道”가 같이 하는 모습(同; 自然)에 “가깝다.”
居善地,
(따라서 물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없는 하늘의 모습에) 자리함으로써, (만물이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는) 땅처럼 되도록 하기를 잘하고,
水性善喜於地, 草木之上即流而下, 有似於牝動而下人也.
(일삼음에 있어서) “물水”의 모습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欲가 없는) “땅”(의 모습)을 좋아하기를 “잘하는데”, (따라서) 풀과 나무가 ‘위’가 되게 한 채, (그것들의) ‘아래’로 흐르며, (사람이 ‘위’가 되게 하고, 일부러 일삼는 바爲가 없는) 암컷의 일삼음인 듯한 바를 가진 채, 사람의 ‘아래’(에 자리하는 바)가 되는 것이다.
心善淵,
(물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없이) 마음을 씀으로써, (만물이)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는) 연못처럼 되도록 하기를 잘하며,
水深空虛, 淵深淸明.
(이른바) “물水”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欲가 없음이) 깊고,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欲가 있음이) 텅 비고 텅 비어 있으며, “연못”은 (일부러 일삼는 바爲가 없음이) 깊고, (일부러 일삼는 바爲가 있음이) 맑고 밝다.
與善仁,
(물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있음을) 텅 비움으로써, (만물이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이) 살아가도록 하기를 잘하고,
萬物得水以生. 與, 虛不與盈也.
(“인仁”은) “만물”이 “물水”(의 모습)을 얻음으로써,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爲가 없이) 살아가게 한다는 뜻이다. “여與”는 (일부러 일삼는 바爲가 있음을) 텅 비운다는 말로서, (일부러 일삼아 가득) 참과 더불어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言善信,
(물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없이) 말함으로써, (만물이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는 형상과 실정을) 믿도록 하기를 잘하며,
水內影照形, 不失其情也.
“물水”은 안으로 (그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欲가 없는) 형상(形; 自然)을 본뜨고 비춤으로써, (“만물”이) 그 (일부러 일삼는 바爲가 없는) 실정(情; 無爲)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正善治,
(물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있음에 대해) 곧음으로써, (만물이 일부러 일삼는 바가 있는 휨을) 다스리도록 하기를 잘하고,
無有不洗, 淸且平也.
(“물水”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欲나 일부러 일삼는 바爲가 있음을) 씻어내지 않는 바를 가짐이 없음으로써, (“만물”의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欲가 있음이) 맑아지게 되고, 또한 (“만물”의 일부러 일삼는 바爲가 있음이) 고르게 되는 것이다.
事善能,
(물은 일부러 일삼는 바나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이) 일삼음으로써, (만물이 저절로 그러한 형상을) 따르도록 하기를 잘하며,
能方能圓, 曲直隨形.
(“물水”은 “만물”이 저절로 그러하게) 모난 바를 “따르고”, (저절로 그러하게) 둥근 바를 “따름으로써”, (“물水”이 “만물”을) 휘어지게 함과 곧아지게 함은 (“만물”의 저절로 그러한) 형상을 따르게 된다.
動善時.
(물은 저절로 그러한 때를 말미암아) 일삼음으로써, (만물이 그러한) 때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를 잘한다.
夏散冬凝, 應期而動, 不失天時.
(이른바) 여름은 (저절로 그러하게) 흩어지고, 겨울은 (저절로 그러하게) 엉기는데, (“물水”은 그러한) 때를 말미암아 “일삼음”으로써, (“만물”이 그러한) 하늘의 “때”를 잃어버리지 않게 한다.
夫唯不爭,
이른바, 오로지, (물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지 않음으로써, 사람과) 다투지 않는데,
壅之則止, 決之則流, 聽從人也.
(“이른바”, “물水”은 사람이 뚝방) 그것을 북돋우면 멈추고, 그것을 터주면 흐른다는 말로서, (일삼음에 있어서 “물水”은 일부러 일삼고자 하거나 일부러 일삼지 않은 채) 사람(의 일삼음)을 기다리고 (그것을) 말미암는다는 뜻이다.
故無尤.
따라서 (천하는) 흠이 되는 바를 가짐이 없다.
水性如是, 故天下無有怨尤水者也.
(일삼음에 있어서) “물水”의 모습은 이와 같은데, “따라서” 천하는 “물水”에 대해 원망을 하거나 “물水”로 인해 “흠”이 되는 바를 가짐이 없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