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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거리기, 경쟁 바깥에 있는 참된 자신의 '거처'를 발견해 내자!

독립출판 무간 2016. 8. 2. 07:29

'빈둥거린다'는 표현은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여성에 대해서 그냥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다'고 하면, 결혼 적령기가 지났는데도 아직 결혼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기 쉬우며, 남성에 대해서라면 일자리를 얻지 못한 데 대한 한심스러워 하거나 딱해 하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물론 지금은 일정한 직업 없이 지내며 그때그때 일거리를 찾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으며, 독신주의를 택하는 여성들도 늘고 있어 예전처럼 올드 미스라는 꼬리표를 다는 일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빈둥거리기'가 그렇게 놓은 평가를 받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빈둥거리기'는 점점 더 사회의 한구석으로 밀려나 더욱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요컨대 '빈둥거린다'는 것은 '생산적이 아닌'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로 인해 당사자의 사회성에 결손이 생겨난다고 여긴다. 이 때의 사회란 어떤 공통의 목표나 목적을 갖고 있다고 믿는 환상의 공동체다. 모두가 그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거기서 일탈해 있다. 사람들이 '분발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은 '빈둥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를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빈둥거리기 챔피언은 어린아이들일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빈둥거리기 시간을 '놀기'라고 부른다. 그 시간은 일상의 현실 논리로부터 벗어나기 있기에 , 그리고 합목적성에서 자유롭기에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이다. '무익한 것'일 때 더 충실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지금 경쟁주의나 생산성주의, 우생사상 등에 크게 경도된 듯이 보인다. '빈둥거림주의'란 바로 이런 치우침에 대한 일종의 경종이다. 그러나 게으름 피우기를 장려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의 바깥에 있는 참된 자신의 '거처'를 발견하는 일이다. 즉, 생산성의 가치로부터 벗어나 있는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는 일인 것이다.

 

흔히 현대의 젊은이들이 목표를 상실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회가 그들에게 목표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젊은이들이 경쟁주의, 생산성주의, 물질주의, 배금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부모 세대나 또 그 부모의 부모 세대가 추구해 온 '신화'에 그들이 이제 넌덜머리를 내고 있다면, 그것은 꽤 믿음직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들에게 진정한 위기란 낡은 신화의 바깥에 있는 진정한 자신의 거처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가 아닐까.

 

지금의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마음 편히 놀거나 빈둥거릴 시간을 어른들에게 빼앗겨 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은 여전히 그것을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다. 이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다. 중년인 우리들도, 더 나이를 먹은 어른들도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부터 우리들은 이토록 서두르며 곁눈도 주지 않은 채, 쫓기듯 길을 가게 된 것일까. '한눈 파는' 일도, '딴청 피울' 새도 없이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빈둥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은 아닐까. 지금이야말로 '빈둥거리기'를 회복해야 할 때가 아닐까.

 

(쓰지 신이치 지음 / 김향 옮김, "우리가 꿈꾸는 또다른 삶,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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