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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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이야기

“귀사에서 제안하신 일자리를 거절합니다. 이력서도 동봉하지 않겠습니다.”

독립출판 무간 2016. 10. 12. 21:06

프랑스 청년 쥘리앵 프레비외는 자그마치 7년 동안 신문에 채용공고를 낸 회사들에 편지를 썼다. 1천여 통의 편지를 썼으니 프랑스에 있는 상당수의 회사에 편지를 보낸 셈이다. 그는 어느 방송국 인터뷰를 통해 이런 일을 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그는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러 갔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길을 가는데 죽어있는 고양이를 봤습니다. 슬픔을 느낍니까?" 예비 신입사원의 심리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마련된 간단한 형식의 질문지 앞에서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특이하다고 할 만한 형식의 질문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뭔가 거슬렸다. 그가 지원한 인턴사원의 업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낯선 질문들. 프레비외는 비인격적 대우라고 느꼈다고 한다. '도대체 죽은 고양이가 인턴 업무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두번째 면접시험에서도 면접관들의 짓궂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들의 거만한 태도가 면접시험을 보러 온 청년의 심기를 건드렸다. 회사라는 이름의 집단이 한 개인을 얼마만큼 불편하게 할 수 있는지를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경험하게 된 것이다. 프레비외는 이후 채용공고를 내는 회사에 '입사거부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자기소개서' 격인 '지원동기서'의 편지형식을 빌어 채용공고를 낸 업체를 조롱한 것이다.

 

담당자님께.

노동시장 신문에 게재된 귀사의 채용공고를 보고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귀사의 채용공고에서 몇 가지 오류를 발견하였습니다. 귀사는 구직자들에게 “성공적인 삶을 원한다면...”이라고 하시고는 입사 후 6~9개월간 법적 최저임금의 65%를 약속하셨습니다. 성공적인 삶과 박한 임금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가 성립되어 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박한 임금 때문에 당장 하던 일을 그만두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을 테니, 안타깝지만 귀사의 글에는 표현상의 오류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오류 때문에 귀사를 선택하려는 지원자가 귀사의 경쟁사로 발걸음을 옮길 것 같습니다. 이 명백한 모순을 바로잡아주셨으면 합니다. 따라서, 귀사에서 제안한 일자리를 거절하며, 추후에는 이런 종류의 큰 실수가 없기를 바랍니다. 답장을 기다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 2004년 3월 14일 쥘리앵 프레비외

 

담당자님께.

며칠 전에 게재하신 귀사의 채용공고를 보고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직업 스트레스와 육체적인 질병의 심화 그리고 무기력증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노동자 두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업무 과로에 시달리며 세 명 가운데 한 명 이상이 회사의 무리한 업무 지시로 인해 회사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과도한 업무, 노동자들의 신체 리듬을 고려하지 않은 작업 시간표, 회사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된 교대 근무제나 변동 계약서와 같은 신개념 경영 정책, 불안정한 계약서, 실무적 차원의 이해 부족,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소극적인 경영 방침, 신체 유해 물질, 기업의 불투명한 미래... 이 모든 것이 바로 노동자를 불안하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귀사에서는 지금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의 주야간 시간에 근무할 수 있는 생산 기술직 노동자를 찾고 계십니다. 저는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제약 회사 안에서 번아웃되거나 과로사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개인적인 캠페인 차원에서, 저는 귀사에서 제안하는 일자리를 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 2007년 7월 16일 쥘리앵 프레비외

 

 

취업시장에서 좌절한 청년의 짓궂은 장난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그저 장난이라기엔 양이 많고 꾸준했다. 무려 7년 동안 1천 통 넘는 입사거부서를 썼다. 1천여 통의 편지 가운데 돌아온 답장은 고작 50여 통에 불과했다. 약 5퍼센트의 회신율이다. 사실 이 정도의 회신율이라면 짓궂은 장난치고는 꽤나 많은 답장을 받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답장은 그가 보낸 메시지에 대한 응답이 아니었다. 편지에는 그가 서류심사에 탈락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통보형식의 문구만이 적혀 있었을 뿐이다. 이는 서류심사에 탈락한 지원자들에게 회사 측에서 일괄적으로 보내는 전형적인 공문서 형식의 편지였다. 심지어 어떤 회사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내기도 했다. “지원동기서와 함께 동봉했어야할 이력서가 누락되었습니다. 이력서를 다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http://media.daum.net/culture/newsview?newsid=20161012110508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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