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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시국선언 하다 “인간들아, 동정이 아닌 공존을 바란다”

독립출판 무간 2020. 8. 22. 13:02

동물, 시국선언 하다 “인간들아, 동정이 아닌 공존을 바란다”

 

‘절멸 선언’ 퍼포먼스... “인간이 멈추지 않는다면 ‘절멸’ 뿐”

 

나는 정혜윤이고 오늘 나는 박쥐다. 나는 니파,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인간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나에게로 왔다. 그 뒤로 많은 것이 파괴되었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내가 혐오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니파 바이러스 때는 백십만 마리의 돼지가 사살되었다. 사스 때는 사향고양이를 끓는 물에 던졌고, 코로나 때는 밍크와 천산갑을 죽였다. 인간은 죽을힘을 다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인 힘으로 산다. 나는 죽는다. 그러나 돼지와 사향고양이와 천산갑과 밍크와 그리고 다른 동물 누구도 더는 건드리지 말라.”

 

오늘 나 이수현은 혹등고래로서 말한다. 내가 태어난 후 줄곧 바닷속은 조용할 때가 없었다. 고래들은 물속에서 저주파를 써서 대화하는데, 인간이 타고 다니는 기계와 설치해 놓은 기계들이 내는 소음 공해가 엄청나다. 올해는 소음이 줄어 편해졌다. 알고 보니 육지 전역에 바이러스가 돌면서 선박 이동량이 줄었다고 한다. 다른 많은 동물들에 비하면 고래들이 나아 보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이제 고래를 잡는 일을 금지했다. 혹등고래는 수가 늘어 멸종위기에서도 벗어났다고 한다. 내가 고마워해야 하나. 나는 동정이나 환호가 아닌 공존을 바란다.”

30여 명의 동물권 운동가·예술가 등이 동물의 모습으로 분했다. 그리고 한 사람씩 동물의 경고를 전하며 쓰러져 죽었다. '절멸 선언' 퍼포먼스다. 인간과 자연(동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탈성장·탈육식이 이뤄지지 않으면 인간과 동물 모두 공멸한다는 의미다.

이들은 절멸 선언을 발표했다. 한 편의 시였다. 동물이 된 이들은 현대 인류는 절멸의 재료이자 레시피”, “인간이 품는 욕심마다 지구의 암으로 번졌다”, “지금 하는 것처럼만 하면 절멸의 성찬이 완성되리라고 했다.

인간을 향한 경고와 분노가 이어졌다. “당신들은 우리 피난처까지 쫓아와 숲을 불태우고 약탈하다가 바이러스에 걸렸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지금이 아닌) 1760년부터 당신들이 팬데믹!”, “당신들(인간)이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잃어갈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이런 퍼포먼스를 준비한 데 대해 마스크를 쓰고 손 소독제를 비치하는 것보다 좀 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팬데믹의 근본원인으로 동물에 주목해야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나 이슬아는 오늘 돼지로서 말한다. 나에게서 새로운 병이 발견되었다며 당신들은 대책을 준비한다. 이 병은 나를 통해 왔지만 내가 만든 병이 아니며 나에게서 시작된 병이 아니다. 아주 여러 명의 당신들이 힘을 모아 만든 병이다. 나는 태어나 꼬리가 잘리고 이빨이 뽑히고 생식기가 잘린다. 나는 갇힌 채 먹기만 하며 빨리 자란다. 뒤돌아볼 수조차 없는 감옥 같은 공간에서 수없이 주사를 맞으며 자라 당신들에게 온갖 방식으로 먹힌다. 간혹 산 채로 묻힌다. 고통은 돌고 돌아 모두를 아프게 할 것이다.”

 

순록정다연 씨. “전방을 끝없이 뻗어나간 도로와 철책, 국경선처럼 이어진 송유관이 모든 것을 끊어놨다가죽에 덕지덕지 달라붙는 기름 찌꺼기, 더는 마실 수 없는 검은 강, 서식지는 줄어들고 있지만 검은 연기를 뿜는 공장은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내 이름은 최용석, 닭이로다. 치맥에 치킨, 너희가 물건 찍어 내듯 공장에 가둬 기르고 죽이고 마구 만들어 잡아먹는 닭이다. 학살의 고통을 어찌 알겠느냐. 수백 마리 수천 마리 한곳에 다닥다닥 가둬두고선 병이라도 번지면 방역, 살처분, 그럴듯한 말을 하며 학살하니 주사 놓고 산 채로 파묻고 찔러 죽이고 태워 죽이는 일은 이제 그만하라. 산 생명 그만 먹고 화석연료 그만 떼고, 원자력발전소 그만 짓고, 앵간히 X먹고 앵간히 X돌아다니고 앵간히 버리고 앵간히 부시고 제발 같이 살자.”

 

나 김남시는 오늘 고슴도치로서 말한다. 나는 내게 위험이 닥쳐온다고 느끼면 몸을 웅크려 등의 가시를 세우고 쉭쉭 소리를 낸다. 그러나 짧은 가시가 만들어내는 부피만큼이나마 위험과 거리를 두려는 내 작은 몸뚱이가 그 순간 얼마나 떨고 있는지 당신들은 모를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절멸의 가능성이 현실화된 이제서야 두려움에 빠진 당신들은, 지구를 바로 이렇게 만들었던 못된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 탄소연료가 대기온도를 상승시킨다는 걸 깨닫고 나자 당신들은 수십만년간 분해되지 않고 지구와 생명체를 파괴할 방사능 오염은 아랑곳않고 서둘러 원자력 발전소를 세운다. 절멸의 두려움 앞에서 당신들은 지구와 그 생명체 전체를 파괴할 거대한 칼날을 마구 휘둘러댄다.”

https://news.v.daum.net/v/2020082211173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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