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도덕경 감산주 9장 본문
9장
持而盈之, 不如其已; 揣而銳之, 不可長保. 金玉滿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功成名遂身退, 天之道.
채워서 (가득 찼는데 더욱 채워서) 그것을 넘치게 하는 일은 멈추는 것만 같지 못하고, (일부러 일삼아) 꼼꼼하게 살펴서 가리거나 그것을 (일부러 일삼아) 꼼꼼하게 갈아서 다듬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 금金과 옥玉을 집안에 가득 채우더라도 그것을 지켜낼 수 없고, 부유하고 고귀하다고 해서 교만한 것은 스스로 그 허물을 남기는 일이다. 공功이 이루어지고 이름이 드러나면, (그) 몸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이치道이다.
此言知進而不知退者之害, 誠人當知止可也.
이 장은 (그) ‘나아감進’은 알지만 (그) ‘물러남退’을 알지 못함의 폐해害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따라서) 진실로 사람들은 마땅히 (그) 멈춤止을 알아야 한다.
持而盈之不如其已者, 謂世人自恃有持滿之術, 故貪位慕祿進進而不已.
“持而盈之, 不如其已.” 이른 바, 세상 사람들은 “채워서” (가득 찼음에도 더욱) 채울 수 있는滿 술책術을 일부러 일삼아自 만들어 내고有 (그러한 술책을) 의지한 채, 직위位를 욕심내고 봉록祿을 도모하기 때문에, (그것에 마음이) 나아가고, (그것에 몸이) 나아갈 뿐, (그것에 ‘나아감’ 그것을) 멈추지 못할不 따름이라는 것이다.
老子意謂雖是能持, 不若放下休歇爲高, 故“不如其已.” 倘一旦禍及其身, 悔之不及. 卽若李斯臨刑, 顧謂其子曰: “吾欲與若復牽黃犬, 出上蔡東門逐狡兎, 豈可得乎.” 此蓋恃善持其盈而不已者之驗也. 故云: “知足常足, 終身不辱, 知止常止, 終身不恥.” 此之謂也.
『老子』가 생각하기에意 이른 바 비록 그것이 (그렇게 일부러 일삼아) “채워질”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마음을) 아래에 내려놓은 채, (그 마음을) 쉬게 하고休 (그렇게 일부러 일삼는 몸을) 쉬게 함歇을 높임만 같지 못한데, 따라서“不如其已”라 일컬은 것이다. 왜냐하면倘, (그 마음을 멈추지 못함으로써) 일단, 그 몸에 화禍가 미치게 되면, (멈추지 못한) 그것을 후회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바로 이사李斯가 형장에 나와, (같은 처지의) 그 아들을 바라보며 “내가 (너와) 더불어 다시 (예전처럼) 누런 개를 끌고, 상채上蔡 동문東門으로 나가, 토끼나 쫓으며 (그렇게) 살려고 했었는데, (이제) 어찌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것은 무릇 (일부러 일삼은) 술책善을 의지한 채, 그것이 넘치도록 채워서, 멈추지 않았을 따름의 폐해驗이다. 따라서 일컬은 것이다. “만족할 줄 알아서 언제나 만족하면, (그) 몸이 다하도록 모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아서 언제나 멈추면, (그) 몸이 다하도록 창피를 당하지 않는다.” 이것이 (“持而盈之, 不如其已”의) 뜻이다.
揣而銳之, 不可長保者. 揣, 揣摩. 銳, 精其智思. 如蘇張善揣摩之術者是也. 謂世人以智巧自處, 恃其善於揣摩, 而更益其精銳之思, 用智以取功名, 進進而不已.
“揣而銳之, 不可長保”. “揣”는 (그 앎과 생각의 배경을 일부러 일삼아) 꼼꼼하게 살펴서 가린다揣摩는 말이다. “銳”는 그 앎智과 생각思(의 내용)을 (일부러 일삼아) 꼼꼼하게 갈아서 다듬는다精는 말이다. (예를 들면)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그 배경을 일부러 일삼아) ‘꼼꼼하게’ 잘善 ‘살펴가려서’ 술책을 세웠던 사람들이다”(라고 할 때의 ‘揣摩’) 그것과 (뜻이) 같다. 이른 바, 세상 사람들은 (그) 앎智을 (일부러 일삼아) 뛰어나게 하고巧, 일부러 일삼아自 (그것에) 머무는데, (일부러 일삼아) 꼼꼼하게 잘善 살펴가린揣摩 (앎) 그것을 의지하고, (일부러 일삼아) 꼼꼼하게 (잘善) 가다듬은精銳 생각思 그것을 더욱 보태며, (꼼꼼하게 살펴가린) 앎智을 일부러 일삼음用으로써 공功을 이루고 이름을 드러내고, (그것에 마음이) 나아가고 (그것에 몸이) 나아갈 뿐, (그 멈춤을) 알지 못할 따름이다.
老子謂雖是善能揣摩, 畢竟不可長保. 如蘇張縱橫之術, 彼此相詐, 不旋踵而身死名滅, 此蓋揣銳之驗也.
(따라서) 『老子』는 이른 바 그것이 (일부러 일삼아) 꼼꼼하게 잘善 살펴서 가려질揣摩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일부러 일삼아 꼼꼼하게 잘 살펴서 가려진 것은) 끝끝내畢竟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소진의 합종책合從策이나 장의의 연횡책連橫策과 같아서, (합종책) 저것과 (연횡책) 이것이 모두相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상대를 일부러 일삼아) 속이는詐 술수로서, (오래도록) 이어지지旋踵 못했으며, (소진과 장의 모두) 몸이 사라지고 이름이 없어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무릇 (그 앎과 생각의 배경을 일부러 일삼아) “꼼꼼하게 살펴가림”과 (그 앎과 생각의 내용을 일부러 일삼아) “꼼꼼하게 가다듬음”의 폐해驗이다.
如此不知止足之人, 貪心無厭. 縱得金玉滿堂, 而身死財散, 故曰: “莫之能守.” 縱然位極人臣, 而驕泰以取禍, 乃自遺其咎. 此蓋知進不知退者之害也. 人殊不知天道惡盈而好謙. 獨不見四時乎? 成功者退. 人若功成名遂而身退, 此內得天之道也.
이와 같이, 사람이 ‘멈춤’과 ‘만족’을 알지 못하면, 마음으로 욕심내고 (일부러 일삼기를) 꺼리지 않게 된다. 따라서縱得 “금金과 옥玉으로 집안을 가득 채우더라도” 몸이 사라지게 되고 (그) 재물이 흩어지게 되는데, 따라서 “그것을 지켜낼 수 없다”라고 일컬은 것이다. 따라서縱然 (그) 자리가 아주 높은 사람(임금)이나 신하라고 하더라도 “교만하거나”이 난폭하면泰, 화禍를 입게 되고, 이내 스스로 “그 허물을 남기게 된다.” 이것이 무릇 ‘나아감’을 알 뿐, ‘물러남’을 알지 못함의 폐해害이다. 사람들은 모름지기 하늘 도道는 가득 차서 넘치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을 낮추어 내세우지 않음으로써 그 아래에 머묾謙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설마, 사계절(이 오고 감)을 보지 못했는가? 공功을 이룬 것이 물러난다. (따라서) 사람이 만약 “공功이 이루어지고 이름이 드러난 다음, (그) 몸이 물러나게 한다면”, 그것은 이내 하늘의 도道를 실천한得 일이 된다.
【해 설】
이사李斯(미상~BC.208)는 전국戰國시대 초楚나라 상채현上蔡縣 사람으로, 진秦나라에 들어가 진시황秦始皇을 시중드는 직책인 객경客卿이 되었고,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자 최고 관직인 승상丞相의 자리에 올랐다.
진시황은 승상 이사, 옥새를 관리하던 환관 조고趙高, 26번째 아들이자 막내 아들 호해胡亥와 함께 전국을 순행했는데, 도중에 병病을 얻어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BC.210).
진시황은 군대는 몽염蒙恬에게 맡기고, 황태자 부소扶蘇를 후계로 삼으라는 내용의 유언을 남겼으나, 조고는 호해, 이사를 설득해, 부소와 몽염은 자결하라는 내용으로 유언을 바꾸었다.
이사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반대하다가 변방으로 추방된 부소가 황제가 되면, 자신에게 그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고, 부소와 관계가 돈독한 몽염이 등용되게 되면, 자신의 위상을 위협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부소와 몽염을 자결시키고, 호해를 2세 황제로 옹립했다. 그러나 2세 황제는 모든 정치는 조고와 이사에게 맡긴 채, 사치와 향락에 빠졌고, 진시황 능묘, 아방궁, 만리장성 축조 등을 재촉하여 백성의 원성을 샀다.
진나라에 불만을 품은 진승陳勝이 봉기를 일으키는 등 반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진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진나라가 무너질 조짐이 보이자, 이사는 2세 황제를 만나서 아방궁 축조를 중단하고, 농민의 조세를 감면시키자는 등의 대책을 진언했다. 그러나 조고의 방해로 이사는 2세 황제의 분노만 사게 되었다.
조고는 이사의 아들이 봉기를 일으킨 진승과 내통하고 있었다는 모함으로 이사를 투옥시켰고, 진시황을 도와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던 이사는 수도 함양咸陽 거리에서 자신이 기초한 법령에 따라서 공개적으로 허리가 잘려 죽었다.
전국시대, 가장 군사력이 강했던 진나라가 수도를 동쪽 함양으로 옮기고, 점차 세력을 넓혀서, 동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자, 진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위魏나라는 위협을 느끼고 수도를 안읍安邑으로 옮겼다. 진나라의 동쪽 진출로 인한 위나라의 천도는 나머지 연燕, 제齊, 초楚, 한韓, 위, 조趙 6국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진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군사력이 약했던 나머지 6국은 진나라를 상대로 한 전략과 외교 정책을 모색했는데, 이 때, 조나라의 소진蘇秦은 남북으로 종열縱列하고 있던 6국이 서로 연합해서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책合縱策을 주창했으며, 그의 합종책은 15년간 지속되면서 진나라의 동쪽 진출을 막아냈다.
그러나 6국의 합종은 진나라의 장의張儀에 의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장의는 소진의 합종책에 대항해 연횡책連橫策을 주창했는데, 그것은 진나라가 6국과 개별적으로 동맹을 맺어서 비동맹 국가들을 억제하는 한편 공격하는 것이었다. 장의는 6국의 합종은 인위적이고 일시적인 것으로서, 6국 모두 중원中原의 패권覇權을 차지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결속력이 약하고, 서로의 신뢰가 부족하다는 점을 꿰뚫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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