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무간
노자권재구의 37장. 도는 언제 어디서나 저절로 그러하다. 본문
此章, 與道常無名章. 語勢, 皆同.
이 장(의 뜻), “道常. 無名.”(을 일컬은 32)장(의 뜻)과 어우러진다與. 어투語勢, 무릇 (그것의 어투와) 아우러진다同.
無爲, 無不爲, 自然, 而然也.
(“도道”는) “무위無爲”하고, (따라서) “무불위無不爲”하다(는 말), (“도道”는) ‘자연自然’하고, 따라서 “그러하다(然; 無不爲)”(는 뜻)이다.
侯王, 若能守. 此, 無爲之道, 則不求化萬物, 而萬物, 自化矣.
“侯王, 若能守, (萬物, 將自化.)” 이것은 (“제후”와 “임금”이) “무위無爲”의 이치道(를 “지키면”), 다시 말해, “천하萬物”를 (일부러 일삼아) “어우름化”을 바라지求 않으면, 따라서 “천하가 저절로 그러하게自 아우러지게 된다化”(는 뜻)이다.
天地之間, 萬, 化, 欲作時, 吾, 但以無名之樸鎭之. 化, 萬物之變也.
(“化, 而欲作, 吾, 將鎭以無名之樸.” 이것은) “하늘과 땅 사이, (다시 말해) 천하가 변화함(化; 움직임·일삼음)에 있어서, 일부러 일삼기作를 바랄欲 때, 제후와 임금我은 무릇 (비유컨대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는無爲, 따라서 일부러 일삼아 지어 붙일) 이름이 없는 통나무(樸; 道)로써 그것을 (고요하고 조용하게) 가라앉혀야 한다鎭”(는 뜻)이다. “化”는 “천하萬物”의 변화(變; 化)(를 뜻하는 말)이다.
萬變, 俱作, 相尋, 不已. 而我, 但以自然處之. 彼自紛紛, 我自安安. 故曰: 鎭. 下句化字, 不可拈上句化字.
(다시 말해) “천하萬”의 변화가 “일부러 일삼는 바作”를 갖추면, (“제후와 임금我”은 그것아 “가라앉아” 고요하고 조용함, 이것과) 어우러짐相, (이것을) 쫓아감尋이 부득이하다不已. 다시 말해, “제후와 임금我”은 무릇 (“일부러 일삼는 바가 없는無爲”) 저절로 그러한 바自然로써 (“일부러 일삼는 바”를 갖춤) 그것에 자리해야 한다處. (다시 말해) “천하彼”가 일부러 일삼는 바(自; 作)로써 어지럽고 어지러우면紛紛, “제후와 임금我”은 저절로 그러한 바(自; 自然)로써 (그것을) 고요하고 조용하게 해야 한다安安.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鎭.” 아래 문장의 “化” 자字는 위 문장의 “化” 자와 아우러질拈 수 없다.
說: 無名之樸. 何也? 亦無欲而已. 無欲, 則靜. 靜, 則天下自正矣. 不欲, 卽無欲也. 不字, 又有勿字意. 用功處也.
(노자는) 일컬었다. “無名之樸.” 무슨 뜻인가? 무릇,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欲가 없게 하라無’(는 뜻)일 따름이다. (“제후”와 “임금”이)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없으면, (“천하”가 저절로 그러하게) “고요하고 조용하게 된다靜.” (따라서 노자는 일컬었다. “不欲. 왜냐하면, “제후”와 “임금”이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가 없이) “고요하고 조용하면”, 무릇 “천하”가 “저절로 그러하게” “다스려지게 되기正” 때문이다. “不欲”, 무릇 ‘일부러 일삼고자 하는 바欲가 없게 하라無’(는 뜻)이다. “不” 자字, 무릇 ‘勿’ 자의 뜻(~하지 말라)을 가진다. (“제후”와 “임금”은 여기에) 일부러 일삼아 공들여 자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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