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에는 자연의 본성이 살아있다!
자연을 알지 못하고 농사를 짓는 것은 기계노동에 불과하다. 풀을 알지 못하면 자연에 가까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자연의 순환을 해치지 않는 농사를 지을 때 원죄를 씻어가는 농사가 된다. 풀을 베는 노고가 있어야 풀을 알고 자연을 알게 된다. 제초제를 뿌리고 비닐을 덮어버리면 풀을 알지 못하게 된다. 한 가지 종만을 알게 되고, 수백 종 풀들의 존재에 눈을 감아버리게 된다. 풀을 알고 자연에 가까운 농사를 짓게 될 때, 우리는 생활에 대해 자각할 수 있다. 잡초가 생겨난 이유를 알게 되면 인간의 이기심도 깨닫게 된다. 잡초를 농사에 이용하면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는 더없이 유익하고 편안한 일이 될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잡초는 토양침식을 막고 토양에 유기물을 제공하며, 야생생물에게 먹이를 제공하거나 유전자 은행의 역할을 한다. 오염정화원의 역할도 하고 조경식물로서 역할을 발휘하기도 한다. 또 약료, 염료, 향료, 향신료를 제공하는 자연으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무엇보다 구황식물로서 진가를 발휘하기도 한다.
이제 잡초를 농사에 끌어들여 잡초를 먹어보자. 작금의 밥상으로부터 오는 질병을 예방하고 치유하기 위해서 잡초를 밥상에 올려놓자. 포식자인 인간이 잡초마저도 포식하고 말 것인가? 하지만 잡초를 먹는 것은 포식자로서 나서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자신이 사육하고 재배하는 것이 얼마나 인간 중심적이었는지, 얼마나 자연의 생명을 위태롭게 해 왔는지를 깨달으면서.
자연이란 말의 뜻은 '스스로 그러하, so-self'이다. 자연은 단순한 환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은 인간을 중심으로 놓고 그 주위에 둘러싸인 것을 의미하니까. 그래서 나는 자연환경이란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자연은 철학이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나는 자연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본다. 즉 조경하거나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뜻이다.
야생의 뜻은 '들에서 태어난'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것들,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의 총칭이다. 그래서 흔히 야생초, 야생화, 야생동물이라는 말을 쓴다. 산야초도 야생초의 또다른 표현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용어의 문제점은 있지만 그래도 나는 잡초라는 말을 더 선호한다. 잡초란 다양한 풀의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산에서 자라든 들에서 자라든, 모든 풀들은 각기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풀들이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인간은 자연에 대한 간섭을 줄여야 한다. 잡초는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인지도 모른다.
(변현단 글, 오경자 그림, "약이 되는 잡초음식,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