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율곡의 순언 10. 이름과 몸, 어느 것이 유일한 바로서 가까이해야 할 바인가?

독립출판 무간 2025. 5. 31. 20:20

제10장

 

 

이름과 몸, 어느 것이 (유일한 바로서) 가까이해야 할 바인가? 몸과 재화, 어느 것이 (많고) 많은 바(로서 손님으로 여겨야 할 바)인가?

名與身, 孰親, 身與貨, 孰多.

 

이름名은 정말로 손님(과 같은 것)으로서, 몸身이 일삼는 (많고 많은) 바깥 물건 (중 하나일 따름)이다. (그러나) 몸은 (유일한) 하나일 따름이다. (그리고) 재화도 (몸이 일삼는) 많고 많(은 바깥 물건 중 하나일 따름이)다. 따라서 몸을 내버린 채, 이름과 재화를 쫓는 일은 (정말로) 가까이해야 할 바를 내버린 채, 손님으로 여겨야 할 바를 따르는 일이자, (정말로 유일한 물건인) 하나를 (멀리하는 바로) 내맡긴 채, (많고) 많은 바를 구하는 일로서, 어리석음이 (보다) 두터운 바를 가지는 바가 없는 일이다.

名者, 實之賓, 於身, 爲外物也. 身, 一而已. 貨財, 則衆多. 若棄身而循名與物, 則捨親而從賓, 役一而求多, 惑, 莫甚焉.

 

 

(이름이나 재화를 일부러 일삼아) 얻는 일과 (일부러 일삼은 이름이나 재화를) 잃어버리는 일, 어느 것이 병病으로 여겨야 할 바인가?

得與亡, 孰病.

 

이름이나 재화를 (일부러 일삼아) 얻게 되면, 몸이 반드시 (일부러 일삼아) 잃어버려지게 된다. (따라서 이름이나 재화를 일부러 일삼아 얻는 일) 이것은 (도리어) 잃어버리게 되는 일이다. (그러나 일부러 일삼은 이름이나 재화를 잃어버리게 되면) 몸을 (저절로 그러하게)얻게 된다. 이른바, (일부러 일삼은 이름이나 재화를 잃어버리게 되면, (몸을 일부러 일삼아) 해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일부러 일삼은 이름이나 재화를 잃어버리는 일, 이것은 도리어) 얻는 바를 일삼게 된다. 따라서 (일부러 일삼은 이름이나 재화를 잃어버림으로써) 몸을 얻는 일과 (이름이나 재화를 일부러 일삼음으로써) 몸을 잃는 일, 어느 것이 병病으로 여기는 바를 일삼아야 할 바인가?

得名與貨, 則身, 必亡. 是, 乃亡也. 得身. 則雖亡名與貨, 而不害乎. 爲得也. 然則得身與亡身, 孰, 爲病乎.

 

 

이러한 까닭으로 (이름을 일부러 일삼아) 아끼는 바를 두텁게 하는 사람은 반드시 (몸을 일부러 일삼아) 닳게 하는 바를 크게 하게 되고, (재화를 일부러 일삼아) 쌓는 바를 많아지게 하는 사람은 반드시 (몸을 일부러 일삼아) 잃어버리는 바를 두텁게 하게 된다.

是故甚愛, 必大費, 多藏, 必厚亡.

 

이름을 (일부러 일삼아) 아끼는 사람은 반드시 (일부러 일삼아 자신의) 바탕이 되는 바(實; 身)를 덜어내게 된다. 이것이 “대비(大費; 몸을 일부러 일삼아 닳게 하는 바를 크게 하게 된다)”의 뜻이다. 재화를 (일부러 일삼아) 쌓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몸을 (일부러 일삼아) 잃어버리게 된다. 이것이 “후망(厚亡; 몸을 일부러 일삼아 잃어버리는 바를 두텁게 하게 된다)”의 뜻이다.

愛名者, 必損實. 是, 大費也. 藏財者, 必失身. 是, 厚亡也.

 

 

(몸이 저절로 그러한 성性·명命을 살피게 되면, 몸이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재화에 대해) 만족할 줄 알게 되고, (따라서 일부러 일삼아) 욕됨을 당하지 않게 되며, (저절로 그러하게 지어 불리는 이름에 대해 일부러 일삼는 바를) 멈출줄 알게 되고, (따라서 일부러 일삼아) 위태롭게 되지 않는다. (이른바, 몸이 저절로 그러한 성性·명命을 편안하게 여기게 되면, 몸이 저절로 그러하게) 오래 가게 되고, 오래 보여지게 된다.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동사정董思靖은 (『도덕진경집해道德眞經集解』 제44장 주註에서) 일컬었다. “이른바, (몸이 저절로 그러한 바가 갈라지고) 나누어진 안·팍(內·外; 性·命)을 살피게 되면, (몸이 저절로 그러하게 지어 불리는 이름에 대해 일부러 일삼는 바를) 멈출 줄 알게 되고, (저절로 그러하게 가지는 바가 있는 재화에 대해) 만족할 줄 알게 된다. 따라서 (몸이 일부러 일삼아 닳는 바를) 얻거나, (일부러 일삼아) 잃어버려지는 환란을 가지는 바가 없게 된다. 이른바, (몸이 저절로 그러한 바가) 늘 그러한 성性·명命을 편안하게 여기기를 잘하는데, 어찌 (몸이 일부러 일삼아) 위태로운 바나 욕됨을 당하는 바를 가지는 바가 있게 되겠는가? 따라서 ‘(몸이 저절로 그러하게) 오래 가게 되고, 오래 보여지게 된다’는 것이다.”

董氏曰, 惟審於內外之分, 則知止知足. 而無得失之患. 故能安於性命之常, 亦何殆辱之有. 所以可長久也.

 

 

右第十章.

여기까지가 제10장이다.